강원도와 경기동부권 쇼핑객까지 싹쓸이

김효화(춘천원도심 상권르네상스 사업단장) 

지하도 개발 바람 불며 1996년부터 공사 

1995년 전후로 지하상가 개발이 붐을 이루었다. 대구, 부산, 전주, 춘천 등 도심이 들썩들썩했다. 자동차가 급격히 늘어나던 때였다. 교통난 해소를 위해 지하도 개통과 지하철 건설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지금이야 서울 지하철이 9호선까지 놓였지만, 당시엔 기본 노선인 1, 2호선 이외에 3, 4호선이 확대되던 참이었다. 1996년에는 대전 도시철도 1호선 공사가 시작되었다. 때를 맞춰 지하상가 개발도 함께 진행되었다. 부산, 대구, 전주 등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지하철공사와 연계해 역 주변 지하도 상가건설이 활기를 띠었다. 춘천은 지하철이 없어 역사와 연결되진 않았지만, 시내 중심가 교통난 해소를 위해 지하 공간 개발계획을 확정하고 실시설계에 들어갔다. 춘천지하도상가 건설 논의는 이미 1989년 12월부터 시작됐다. 춘천시번영회는 ‘지상 횡단보도를 지하보도화하여 행인의 안전을 도모하며, 교통체증을 개선하고 대규모 지하주차장을 확보’하기 위해 지하도상가 건설을 시에 건의했다. 1991년 12월 춘천시의회는 ‘지하상가조성계획’을 가결했다. 1993년 8월, 시는 ‘지하도로 및 상가건설 운영사업자 모집공고’를 냈으며 사업시행자로 대우건설과 삼성물산이 선정됐다, 

1996년, 춘천 중심가로 전국 소상공인들의 시선이 쏠렸다. 1, 2, 3차에 걸쳐 분양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1차 분양은 평균 경쟁률 15:1로 100% 분양되었으며 2차, 3차 분양도 성공해 354개 점포 전체가 분양되었다. 춘천지하도상가는 352면의 지하주차장까지 갖춘 일류 백화점급 시설이라고 소문이 났다. 마산, 천안, 성남, 수원 등지에서 장사하던 상인들이 춘천으로 이주하여 점포를 분양받았다. 춘천지하도상가는, 도청 아래쪽은 도청로, 육림고개 아래 방향은 남부로, 중앙시장 아래는 중앙로로 이름 지어졌다. 가, 나, 다, 라, 마열로 구획이 되었으며 각 구간별로 패션의 거리, 사랑의 거리, 만남의 거리라는 별칭이 붙었다. 

352개 점포 갖춘 강원도 최고의 쇼핑몰

1997년 10월 춘천지하도상가의 임시 사용이 시작되었다. 가장 먼저 문을 연 점포는 도청로의 돈카돈까였다. 돈카돈까 이명구 사장은 수원에서 외식업소를 운영하다 지하도상가 분양을 받기 위해 춘천으로 이주했다. 이명구 사장은 처음에는 컬러푸드라는 도너츠전문점을 운영했다가 프랜차이즈 본사가 문을 닫으면서 돈까스점으로 전환했다. 춘천 최초의 일본식 돈까스 전문점이었다. . 

성남에서 온 장영옥 사장은 지금은 여성의류점을 하고 있지만 1997년 당시에는 남부로에 아동복 전문점을 오픈했다. 중앙로에서 가방전문점인 ‘친절한 보니따’를 운영 중인 현희옥 사장은 천안에서 이주해와 보니따, 유니온베이, 인따르시아 등 3개의 점포를 개점했다. 마산에서 온 황도연 사장은 중앙광장에 ‘신발나라’를 열었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상가 임시 사용 시에는 10개의 점포만 문을 열었지만 1998년 4월 정식 개점을 하면서 120개 점포가 영업을 시작했다. 이후 352개 점포가 한 곳도 비지 않고 모두 개점을 하였으며 지하도상가는 연일 인파로 북적거렸다. 2000년대 전후에는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해 강원도 전역과 경기도 동부권 최고의 쇼핑몰로 명성을 떨쳤다. 1999년 안경전문점을 열어 지금까지도 중앙광장에서 ‘안경마트’를 지키고 있는 이삼열 사장은 “밤 11시까지 도로에 사람들이 꽉 차 사람들이 어깨를 부딪히며 다녔고 좋고 값싼 물건을 서로 사려고 고객들이 경쟁을 했었다”고 전했다.

김효화(춘천원도심 상권르네상스 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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