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근(시인)

4월 26일에 군대 제대를 했다. 나는 갈 데가 없었다. 원래부터 가난했지만 내가 군대에 가 있는 사이에 어머니는 더 망해서... 말도 안 되네. 어머니는 아무튼 오갈 데도 없고... 나 역시 오갈 데도 없이 난처하게 길 위에 남겨졌다. 어디로 가지?

어찌 세상에 군대 제대가 두려운 청춘이 있을까. 나는 GOP 철책을 붙들고 울었다. 돌아갈 곳 없는 청춘... 정도의 낭만이 아니었다. 낭만이라니... 나는 갈 데가 없었다. 제대하면 그날부터 갈 데가 없었다.

좀전에... 내가 가볍게 취해서 집에 오는데...

104층 청년이 내 앞에서 막 취해서... 그 아버지가 그를 부축하면서 말했다. 또 떨어졌대요. 또 떨어졌답니다. 

어흇~ 시바

엄청난 슬픔을 꾹 참고 나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그 몇초 사이에 말했다. 어어어어어어이~ 청년이여!

도대체 뭘 떨어졌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아는 어느 술친구가 었었는데... 그가 말했다네! 존버! 존버! 존버!

존재함으로써 버티는 것! 존버! 아아아, 존버!


어제 저녁 라디오 생방송에 출연 중이었는데 갑자기 쿠웅~ 소리와 함께 건물이 흔들렸다. 방음이 생명인 라디오 스튜디오에 그런 소리와 진동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순간 다들 불안한 표정이 되었지만 애써 모른 척하며 수다를 이어갔다. 

나는 속으로, 지진이 났나? 설마 전쟁?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잠시 후 교통정보 리포터가 서울시내 전역에 갑자기 천둥과 벼락이 쏟아진다고 전했다. 그러더니 곧이어 뉴스에서,

대통령 부부가 귀국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시바

11월이 슬픈 거슨, 변심한 애인 앞에서 자꾸만 술에 취하고야 만다는 거시다. 11월에는 어쨌든 바야흐로 마침내 슬프고 싶어서, 드디어 이럴 수가, 도무지 아름다운 술집 앞 은행나무 아래서 오래 참았던 고백들을 내어밀 수도 있는 거시다. 

그러면 11월의 은행나무는 나보다 더 슬퍼져서 한 생애 제가 키워 온 이파리들을 노랗게 놓아버리고 다시 아무 것도 아닌 몸매로 하늘을 향해, 마치 빨래를 너는 소녀가장 같은 자세로 지상에 발을 묶게 되기도 하는 거시다.

그러니 애인이여, 결별하자.

11월에는 더 깊이 슬픔 안으로 멸망해 가야 하니까 애인의 붉은 귀는 내 고통을 잘 기다렸을 것. 나는 다시 단단해져서 술집으로 가야지. 11월의 술집에서 아무 것도 아닌 생애를 탕진해야지. 아아, 멸망해야지. 시바, 시바, 조낸 시바.


새벽에 문득 잠이 깨어서

당신 잘 있나요?

한 줄 써놓고는 흑흑 흐느껴 운다. 

당신 잘 있나요?

당신 거기서 잘 있나요?

저는 여기서 은하계 밖의 별처럼

캄캄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류근(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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