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느린 눈으로 오시네 / 조현정 시집, 달아실 

시인, 조현정을 책 읽기 모임에서 만났다. 그날은 까페 ‘설지’ 계단에서 본 달빛이 밝았다. 시인을 보면서 새하얀 박꽃을 떠 올린 건 달빛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시인은 단아하게 앉아 조금은 부끄러운 듯한 표정, 그러나 또렷하게 빛나는 눈빛, 낮은 소리로 조곤조곤 첫 시집( 《별 다방 미쓰리》 2019년, 북인 출판사)에 담긴 시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시인은 지금 현재 많이 아프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최근 3년 만에 두 번째 시집 《그대 느린 눈으로 오시네》가 출판되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기왕이면 신작 시집으로 만났으면 더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첫 번째 시집과 분위기가 전혀 다른 시집의 제목도 제목이지만, 좋은 시인을 만난 반가움에 두 번째 시집 《그대 느린 눈으로 오시네》를 읽게 되었다.

첫 장 시인의 말을 아주 여러 번 읽어 보았다. ‘괜찮아?/ 아직은.// 당신께 두 번째 연서를 보낼 수 있어/ 다행입니다.’ 시인이 아프다는 것을 알았기에 이 두 마디에 담긴 시인의 마음이 와 닿았다. 첫 시집 《별다방 미쓰리》에서 ‘언제고 찾아올 빙하기’에서 알약 같은 눈물을 삼키고 한 잎 한 잎 시린 얼음 조각 같은 시간을 베어 물때마다 그리움이 쌓이다가 길을 잃었다 라고 말한 서문과는 사뭇 다르다. 마치 고통의 시간을 지나온 사람의 언어가 그리 담담할 수 있을까 싶어 마음이 서늘했다.

‘적극적으로 /치료하면 나을 수 있다는 말엔/ 적/ 극적으로 살 수 있다는 말이 / 숨어 있다. / 85%로 산다/ <생존율 15프로 전문, 26쪽>  

‘…꿈을 문질러 울었나봐/ 속눈썹이 모두 뻐졌어요/ 그깟 속눈썹/‘그깟’이 몰래 수고하고 있다는 걸…/ 울면 열리는 마음의 하늘 문 시, 그깟의 일부<그깟, 27쪽> 

‘접시 물에 담가놓은 무 꼭지에서 장다리 꽃이  피었습니다/작금의 이 한심한 형국에 설마 꽃이 피겠어?/하면서도/나는 어느 결엔가 물을 갈아주고 있었습니다 < 슬픈 긍정 전문>’

이 시집은 작은 것에 시선이 가 있는 시들이 많다. 누구에게나 언제고 찾아올 저마다의 ‘빙하기’를 곁에 두고 살아가는 이들을 토닥여 준다. 생존율 15%라는 현실을 뒤엎는 85%의 극적인 삶을 산다는 선언, 기꺼이 ‘그깟’에 눈길을 주고 싶어진다. 접시 물에서 꽃을 피운 그깟 장다리꽃에 물을 주는 사람. 그가 서 있는 그 시간이 마음 아프지만 아름답다,

꽃잎 위에 저문 별들/하얗게 내려앉네/지금은 그저/아름다워도 좋을 시간

아름다움은/다시 태어나는 단꿈 같은 것/매일 마지막 춤을 추는/그 겨울의 햇살 같은 것

하루씩만 살아야지/어제까지만 슬퍼야지/아득한 마음 너머/아주 잊어버리진 말라고/내 봄날의 저녁 창가/그대는 느린 눈으로/느린 눈으로 오시네 <4월의 눈> 시집 78쪽

4월에 눈이 왔었던가? 벚꽃이 올라온다고 호들갑을 떠는 4월에 누군가에게 지나간 시간처럼 빛났을 별 같은 눈송이. 꽃잎에 닿자마자 녹아 버리기에 내게 단꿈으로 다시 태어나는 4월의 눈. 4월에 내리는 눈은 추운 겨울에라야 더 따뜻한 햇살 마냥 소중한 꿈이다. 참 설레이고 멋지다. 4월에 돌아다보는 겨울의 시간들, 아주 잊어버릴 수 없는 추운 시간들, 하루씩만 살아가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어제까지만 슬퍼하기란 또 어떠한가? 그래도 지금 펼쳐질 내 봄날의 아름다움 저녁 창가에 느린 눈으로 오시는 그대. 참 다행이다. 이 겨울을 잘 견디라는 시인의 말이 위로가 된다, 그대는 내게 ‘연서’가 되어, ‘희망’이 되어 오시라.

박정아 (춘사 톡톡 회원, 금병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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