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원, 30년 만의 추리소설 《박제사의 사랑》
한국문학의 지평 넓힌 ‘서정적 추리소설’

자연을 대하는 아름다운 시선과 서정적인 문체, 실험적인 시도로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아온 이순원 소설가(김유정문학촌 촌장)가 신작 추리소설 《박제사의 사랑》을 출간했다.

《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1992) 이후 30년 만의 추리소설이며 1985년 데뷔 이후 《은비령》, 《수색, 그 물빛 무늬》, 《오목눈이의 사랑》 등 여러 작품을 통해 한국문학의 서정성을 대표해온 작가가 《춘천은 가을도 봄》에 이어 김유정문학촌 촌장으로 재임하며 내놓은 두 번째 작품이다.

이 작가는 과거와 달리 본격적으로 ‘추리소설’이라 칭하는 이유를 묻자, 30년 전 ‘압구정동 오렌지족’이라는 한국 천민자본주의를 상징하는 신조어가 유행하고 경기도에서는 연쇄살인범죄가 발생했던 무렵 출간된 《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를 대하는 당시 문학계의 분위기를 언급했다. “추리소설을 추리소설이라고 말하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안 하는 것인지, 그게 마치 작가와 작품을 보호하고 배려하는 방식인 것처럼 ‘추리기법의 소설’이라 부르고 추리소설을 장르 소설로 하대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래서 언젠가 다시 멋진 추리소설을 써서 문학의 영역으로 당당히 끌어들이겠다고 마음먹었었다”라고 말했다. 

작가는 박제와 관련된 자료조사에만 5년간 공을 들였고 2021년부터 4번에 걸쳐 문예지 《문학수첩》에 연재했다. 《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가 사회성이 응축된 추리소설이라면 《박제사의 사랑》은 이순원 특유의 서정성이 가득한 추리소설이다.

죽은 아내의 유품을 정리하던 박제사 박인수는 수상한 전화번호 두 개와 출처를 알 수 없는 돈이 입금된 아내의 비밀 통장을 발견한다. 그는 아내의 죽음에 숨겨진 비밀이 있다는 사실을 직감하고, 아내의 존엄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진실을 파헤친다. 동시에 의뢰받은 경주마를 박제해가며 늘 죽음에 가까운 삶을 살아온 자신에게조차 너무나도 낯선 두 죽음을 되짚는다.

작가는 주인공을 통해 추리와 박제라는 전혀 다른 두 작업을 동시에 진행하며 죽음과 애도를 냉철하면서도 따뜻하게 바라본다. 그 시선에는 일의 숭고함과 자연의 아름다움, 기억해야 할 삶이 담겨있다. 그 결과 작가의 다짐대로 멋진 ‘서정적 추리소설’이 탄생했다. 이로써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는 대가는 《박제사의 사랑》을 통해 한국문학의 지평을 한 걸음 더 확장했다. 이순원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박종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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