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정(시인)

그들은 바람이 불면 흔들린다. 그리움의 또 다른 표현이다. 그들은 그리움의 농도가 사랑의 농도라고 생각한다. 그리움이 있어 꽃을 피우고 그리움이 있어 열매를 맺는다. 그리움이 있어 단풍이 들고 그리움이 있어 낙엽이 진다. 가을은 특히 그리움이 짙어지는 계절이다. 그래서 목이 긴 꽃들은 모두 가을에 핀다. 그리움이 키를 자라게 만들고 그리움이 가지를 뻗게 만든다.

이외수 장편소설 <보복대행전문주식회사>. 2017년 출간. 이외수 선생님의 이 소설은 식물과의 채널링을 통해 세상의 부조리와 악의를 물리치는 이야기를 담았다. 속 시원하고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거침없이 펼쳐지는 작품. 화천에서 작은 수목원을 운영하는 서른 살 청년 정동언. 모든 식물들과 대화할 수 있는 신비한 능력을 가진 그는 한세은을 만나게 되고 백량금과의 염사를 통해 세상의 모든 식물들과 소통함으로써 식물들의 힘을 빌려 악행을 일삼는 자를 응징한다. 그중 고양이의 이마에 대못을 박는 동물 학대를 일삼는 자를 벌할 때가 가장 강렬하게 기억된다. 그리고 4대강 사업으로 ‘녹조라테’가 된 강물을 관련자들에게 직접 들이켜게 하는 것도. 

이 소설을 꺼내든 건 잠깐 스치듯 본 ‘가을꽃이 목이 긴 이유’를 찾기 위해서였지만 다시금 들추며 정동언과 보복대행전문주식회사가 실제로 있다면 식물들이 오늘 제일 먼저 찾아가야 할 곳은 어딜까 생각한다. 꽃다운 젊은이들을 안타까운 죽음으로 몰아넣고 또다시 대국민 트라우마를 겪게 한, 10·29 참사의 피해자들이 사지로 몰리든 말든 자기 안위만 걱정하는 참사 책임자들이 있는 곳. 그들이 어떠한 처벌을 받는다고 해도 슬픔이 나아질 리 없겠지만 하루빨리 진심 어린 사과와 책임 있는 후속 조치가 마련되어 억울함이라도 덜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더 안아주고 더 토닥거려 줄 걸, 사랑한다고 매일 말해줄 걸, 얼굴 한 번 더 만져줄 걸……” 먼저 보낸 미안함에 몸부림친다는 어머니, 많이 안아주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며 마지막 인사를 하는 아버지, 새벽 5시 30분 어김없이 울리는 아들의 출근 알람, 사랑한다는 음성.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음을 맞았는지 알지 못한 채 가족을 떠나보내야 하는 이들의 눈물 섞인 목소리가 처절하게 들리는 듯하다. 또다시 코끝이 찡해지고 가슴이 미어진다. 얼마나 그리울까. 하루가, 이틀이, 한 달이, 일 년이. 그 시간들을, 그 계절들을, 어떻게 견디나. 그날 이후 그리움으로 목이 긴 꽃들은 계절도 없이 피고 지는데 이 가을, 저 그리움을 어쩌나, 통곡으로 목이 쉬어버린 꽃들의 속절없는 그리움을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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