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일 기자

정말 아쉽고 한숨만 나온다. 리모델링을 마친 김유정문학촌의 김유정기념관말이다.

문화도시를 자처하고 고품격 문화관광도시를 만들겠다는 춘천시가 오랫동안 춘천의 주요 문화관광자원이 될 김유정기념관을 어떻게 저 수준으로 리모델링했는지 답답하다. 김유정이 누군지 굳이 상세하게 다시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하나만 덧붙이면 김유정 본인의 유품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그의 작품 자체와 작품이 실린 옛 잡지, 출판자료, 소설 배경인 마을이 유품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김유정기념관을 더 제대로 손봤어야 했다. 그곳은 춘천의 미래세대가 영감을 받아 새로운 문화예술을 재생산해내고 품격있는 시민으로 성장할 토대가 될 곳이다.

왜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는 된다. 오랜 경험을 지닌 업체이니 믿고 관행적으로 맡겼을 테다. 간소화된 행정으로 짧은 시간에 뚝딱 만들어내니 효율적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편리와 속도에 취해 김유정을 제대로 기념할 수준으로 만들어낼 수 있을지 꼼꼼히 살펴보지 않았으리라. 이런 일이 반복되면 시민들은 행정이 관행적으로 만든 시설에 익숙해져 “뭐가 문제지?”라며 무덤덤해진다. 그게 더 큰 문제다. 문화도시를 자처하는 춘천의 시민들이 더 나은 문화예술을 제공받을 권리가 있음에도 감각이 무뎌지는 게 싫다는 말이다. 

다행히 개관을 서두르지 않는다는 소식이 들린다. 그런데 조금만 시선을 돌려보면 충분히 잘할 수 있었다. 행정이 늘 헛발질만 하는 건 아니다. 이미 기사를 통해 알려진 것처럼 우두상리 옛 ‘우두배터’ 자리에 표지판과 비석, 조형물 등이 설치되며 우두마을의 역사가 되살아났다. 한 시민의 민원으로 시작 7개월 이상 주민자치회· 중간지원조직·행정 등 지역의 다양한 주체들이 힘을 모았다. 춘천에서 거버넌스가 제대로 작동한 모범이라 할만하다. 물론, ‘우두배터’와 김유정기념관이 같은 맥락으로 진행될 사업은 아니다. 하지만 자치의 관점에서 보면 본질이 다르지 않다. 

자치의 핵심은 참여와 경청이다. 그간 행정이 속도와 효율성, 성과에 집착하며 배제해 온 주민과 현장 활동가, 현장 전문가들의 참여와 경청 말이다. 그런 가치를 바탕에 두고 일을 처리한다면 시간이 더디더라도 결과는 훨씬 좋았을 것이다. 지방자치법이 전면개정된 올해는 자치분권 2.0 시대의 원년이다. 주민이 주체가 되는 자치분권이 실질적으로 이루어지는 시대가 열렸다. 춘천은 퇴계동 주민자치회가 전국주민자치박람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했듯이 강원지역 주민자치를 견인하고 있으며 전국적으로도 모범을 보이고 있다. 문화도시 사업의 여러 프로그램도 시민 주도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자치의 연장선에 있다

자치의 큰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 오히려 자치의 영역을 더 확대할 때가 됐다. 속도와 효율성에 대한 집착, 관행적 일 처리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김유정기념관이 똑똑히 보여주고 있다. 당장에는 느리고 답답해도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방법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알면서 안 할 뿐이다. “뭔 회의가 그리 많은지 일은 또 왜 그리 느린지 속 터질 것 같았어. 근데 이렇게 끝나고 나서 싫은 소리 하나 없는 거 보면 그게 맞는 거 같아.” ‘우두배터’ 복원에 참여한 한 주민이 전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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