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예술촌’(소양로4가 90-1)이 문을 연 지 약 6개월이 지났다.

시민이 접근할 수 없었던 옛 기무부대 관사를 재생하여, 예술인에게는 안정적인 창작환경을 제공하고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문화예술을 경험하는 문화적 도시 공간으로 조성, 낙후된 원도심에 활력을 불어넣으려는 목적으로 조성됐다. 6개월이 지난 현재 과연 본래 목적대로 자리 잡아가는지 살펴봤다.

작품제작 증가 등 예술인들 만족도 높아

1. 이혜영(38·퇴계동,오른쪽) 씨가 김민영 작가(왼쪽)로부터 도자기 피규어 제작을 배우고 있다.  2. 지난 10월에 열린 ‘예술촌 시월애 콘서트’ 3. 어린이와 가족들은 이광택 화가와 함께 상상력을 자극하는 그림을 그렸다.

‘예술촌’은 기본적으로 아트 레지던시(Art Residency)이다. 아트 레지던시는 ‘미술창작스튜디오’로도 불리며 예술인들이 함께 거주하면서 창작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공간 지원 및 창작지원 프로그램이다. 

예술인 대부분이 살림집과 작업실이 분리되지 않아 창작에 집중하기 힘든 애로를 겪는다. 그래서 이구동성으로, “그저 전·월세 부담으로 인해 떠돌지 않아도 되는 오직 작업에만 집중할 수 있는 안정적 작업공간이 필요하다”라고 말한다. 서민들의 내 집 마련 꿈만큼이나 절절하다. 한국은 물론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예술인 창작지원, 문화예술 진흥, 도시재생 등 다양한 목적으로 레지던시를 운영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문화예술의 가치 제고와 문화예술 진흥정책의 다양화에 따라 2000년대 들어 국·공·사립 레지던시들이 본격적으로 설립됐으며 주요 지자체들도 저마다 참여, 현재 국내 시각예술 레지던시는 200여 곳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춘천은 2019년 문을 연 ‘예술소통공간 곳’과 더불어 ‘춘천예술촌’ 두 곳이 있다. 

‘춘천예술촌’에는 4.5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회화·설치·미디어아트·조형·판화·악기 제작 등 11명의 예술인들이 엄격한 심사를 통해 입주했다. 6개월이 지난 현재, 입주작가들은 대부분 큰 만족을 드러냈다. 김민영 작가(회화·도자기·판화)는 “예술촌에 입주하기 전에는 살림집 작은 방에 웅크리고 앉아 작업했었는데 이제 생활과 창작이 분리되어 집중하기 좋다. 작업량과 속도가 월등히 늘었다. 또 다양한 장르의 작가들과 교류하며 사유의 폭도 넓히고 있다. 얼마 전 한 시민이 불쑥 작업실 문을 열고 들어와 ‘이거 특혜 아니냐? 이렇게 대접받고 당신들은 시민한테 무얼 줄 거냐?’라고 질문한 적이 있었다. 먹고 사는 것을 넘어 새로운 삶의 방식과 가치가 필요한 시대이다. 예술인들이 이곳에서 좋은 작품을 많이 만들어내고 훌륭한 예술가로 성장, 시민들에게 새로운 지적·정신적·심미적 경험을 제공하고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 예술촌이 존재하는 이유다”라고 말했다.

이광택 작가(회화)는 “조용한 곳에서 작업에 집중하게 된 덕분에 지난 6월 입주 후 3개월간 40여 점의 작품을 완성, 9월에 전시회를 열었다. 이전에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전시를 통해 예술촌의 필요성도 알린 것 같아 만족스럽다. 현재는 그동안 하고 싶었던 100호 크기의 대형작품을 제작하고 있다. 《메밀꽃 필 무렵》, 《동백꽃》 등 문학에서 영감을 받았으며 내년 입주작가 전시회에서 공개할 예정이다.”

송신규 작가(회화·설치)는 “실내뿐만 아니라 마당에서도 작업하면서 스케일을 키울 수 있는 공간 활용성과 지역교류·시민 문화예술프로그램, 평론가 매칭 등 새로운 성장의 자극을 받고 있어서 만족한다. 예술촌이 지역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레지던시는 작가의 창작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와의 소통이나 문화 활성화, 도시재생 기능, 문화교류 역할도 한다. 지난 11월에는 춘천학연구소와 협력하여 춘천초 비술나무, 권진규 조각가 하숙집터, 약사명동 망대, 죽림동 성당, 성골롬반 병원 터, 춘천 향교와 은행나무, 옛 춘천여고와 목백합나무, 춘천미술관과 위성류나무, 춘천이궁, 소양로 성당, 소양로 7층 석탑 등 지역 탐방에도 나섰다. 작가들은 한목소리로 “곳곳의 숨은 이야기를 듣고 나니 비로소 보이는 구멍가게, 동네, 골목 등 춘천의 진면목을 이해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지역에 대한 이해는 창작으로 이어져 춘천을 더 잘 알리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시민 예술향유 공간으로 안착

‘춘천예술촌’은 작가들의 작업공간인 작가동(6개) 외에 ‘예술 방앗간’(예술인·시민 협력형 문화예술활동공간)과 잔디마당을 활용, 예술촌·입주작가·시민을 다양하게 연결하고 있다. 

지난 8월 말, 춘천의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종합적으로 소개하고 체험하는 ‘두더지(Do The 知)야, 놀장(場)’에도 적극 참여, 어린이와 가족들이 입주작가들의 작업공간에서 다양한 장르의 예술을 체험하며 잠재된 예술 감각을 깨웠다. 당시 기자가 만난 학부모와 어린이는 “버려지는 식물의 부산물로 작품을 만드는 등 학교에서 할 수 없는 걸 경험하고 환경과 자연의 소중함을 배우는 의미 있는 기회였다”라고 만족감을 표했었다. 

음악공연도 열렸다. 지난 10월 7,8일 가을 저녁 잔디마당에서는 ‘예술촌 시월애 콘서트’가 열렸다. 예술촌 입주작가인 조진희 리코디스트를 비롯해 싱어송라이터 ‘짙은’, ‘모던다락방’, ‘이나경 국악창작소’, ‘치즈’, ‘소보’, ‘차빛나’, ‘말랑스트링 콰르텟’ 등의 공연이 펼쳐졌다. 

‘예술이 모락모락’은 예술촌 입주작가뿐만 아니라 지역예술인까지 참여, 시민창작동 ‘예술방앗간’에서 시민들과 진행하는 예술 활동이다. 예술인들의 장르를 기반으로 도시재생으로 탄생한 공간이라는 점 등을 고려, 예술적 상상력과 생태적 주제를 아우르는 총 20개 활동이 12월 말까지 진행 중이다. 프로그램이 특별한 건 기존의 일회성 원데이클래스 방식이 아니라는 점이다. 어린이·청소년·가족·노인 세대 총 87명의 참가자는 한 활동 당 5~6회 과정을 모두 참여하며 여러 작품을 만든다. 그 과정에서 예술인의 작품세계와 창작방식을 좀 더 깊게 이해할 뿐만 아니라 기능적 차원을 넘어 시대적 화두와 철학적 소통까지 나눌 수 있다. 시민은 예술인의 친구이자 응원군이 되어 지역 예술시장 확대의 작은 씨앗이 된다.

류재림 작가는 “시간이 충분하니 작업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공유할 수 있었고 서로의 삶과 가치관을 나누며 공감할 수 있었다.” 도선애(41·우두동) 씨는 “어떻게 해야 삶이 나아질지 모를 때 예술인을 통해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그들은 자신만의 도구를 어떻게 마련하게 되었는지, 어떤 고민과 연마의 과정을 통해 다른 이에게 감동을 선사할 수 있었는지 이야기해줬다. 바쁜 생활로 덮어두었던 희망의 씨앗을 싹틔우는 시간이었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춘천예술촌’은 입주작가를 위한 공간일 뿐만 아니라 지역예술인과 시민을 다양한 방법으로 연결하는 공간이며 문화예술의 도시 춘천에 필요한 문화예술 거점 공간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예술촌 정체성 점검·상설전시관 조성은 과제

문을 연 지 약 6개월, ‘춘천예술촌’은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하지만 제대로 기능하기 위한 과제도 있다.

입주작가들은 허준구 춘천학연구소장의 해설을 들으며 춘천 곳곳을 탐방했다.

첫째, ‘춘천예술촌’의 정체성을 뚜렷하게 해야 한다.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예술인들의 창작활동에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때론 작가들이 많은 프로그램에 시달려 작업할 시간이 부족하거나, 오히려 창작에 해가 되는 사례도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올해는 예술인의 창작, 시민의 문화예술 향유 사이에서 적절한 조화를 찾았지만 해가 갈수록 각 영역에서 더 많은 요구가 나올 것은 명확하다. 즉 운영 방침을 명확하게 하여 정체성이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창작에 집중할 것인지 시민향유에 더 많은 힘을 쏟을 것인지 말이다. 

정체성이 명확해야 새로운 입주작가를 선발할 때 ‘춘천예술촌’의 지향에 공감하는 작가들을 선별할 수 있고 예술인들도 만족할 수 있는 예술촌이 될 수 있다. 박시월 작가(회화)는 “장점도 많지만, 아직 정체성이 명확하지 않아 작가성장을 위한 프로그램, 메이커스페이스와의 연계 등이 수도권 레지던시에 비해 부족하다. 내년에는 이점을 보완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둘째, 작가들의 작품을 늘 쉽게 만날 수 있는 상설전시관이다. ‘춘천예술촌’은 작가들의 프라이버시가 존중받아야 할 창작공간이기에 개방적인 볼거리는 없다. 레지던시 본래 취지에도 그게 맞다. 이 때문에 시민과의 접점 확대와 랜드마크로서의 기능을 하려면 상설전시관이 꼭 필요하다. 무엇보다 입주작가들의 지역사회와 소통·문화 활성화·지역 예술인과 교류 등을 위해서 꼭 필요하다. 시민참여를 통해 만들어진 결과물도 전시되면 금상첨화다.

현재 입주작가들은 내년 2월 문화예술회관 전시장에서 열리는 결과보고 전시회 ‘상춘십곡 賞春什曲-봄을 환대하라’를 준비하고 있다. 만약 예술촌에 상설전시관이 조성된다면 작품을 일상적으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입주작가들은 기본 1년간 머물며 창작활동을 할 수 있다. 연장을 원할 경우 1회 최대 1년까지 연장(공예는 4회 최대 4년)할 수 있다.

박종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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