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부터 보아왔던 것처럼 친근한 골목이 있다. 석사동 행정복지센터를 마주하고 있는 좁고 짧은 골목이다. 그 동네를 지날 때는 부러 그 골목 풀향기에 꽃향기까지 풋풋한 풍경을 만나러 간다. 피어나실 꽃씨들을 뿌려 가게 앞을 초록으로 있게 하는 주인장의 사사롭지 않은 마음이 늘 궁금했었다. 약간 식은 햇살에 드리운 건물 그림자를 밟고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선다. 늘 거기서 기다렸다는 듯이 편안한 미소로 반겨 주신다. 헐렁한 바지에 멋스럽게 걸친 풀빛 같은 원피스를 겹쳐 입은 쥔장의 모습은 호기심을 자극하는데 충분하다. “연두” 옷 가게 이름이다. 

조로라니 걸어 놓은 옷의 품새로 보아 아하! 그래서 “연두” 구나. 감탄사로 속마음을 챙겨본다. 자연 소재의 천에 감물, 꽃물, 풀물로 물들여진 자연을 닮은 옷들이 문밖 화단의 초록이들과 일맥상통한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조선 시대로 돌아가 볼 수 있다면, 조선 여염집 옷장 안의 옷들이 이러하지 않았을까 하며 요기조기 둘러 본다. 여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하다. 

바지는 보통 통바지로 넉넉한 폭에 사이즈는 다양한 천연 염색의 자연섬유로 제작된 것이 많으나 그 외 일반적인 바지도 다양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입어보니 멋도 있고 색깔도 아름다운 편한 옷이다. 그 위에 덧입을 수 있는 길이가 다른 원피스가 사이즈별로 다양한 디자인을 뽐내며 걸려 있다. 오묘한 자연의 색이 매력 투성이다. 겉옷 코너에는 많은 외투가 걸려 있었지만, 특히 제주 감물과 또 다른 천연물감으로 염색된 천으로 만든 누비 코트가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디자인은 한복을 개량한 듯하나 모던한 디자인으로 입어보니 세련된 모습으로 멋이 있다. 

자연의 물감이 어찌 이리도 아름다운지 감탄이 절로 나온다. 천연염색 천도 소장하고 있다고 하신다. 개인이 원하는 디자인의 옷으로 맞춤도 가능하다고 하니 고객 만족을 지나 감동이 아닐까 한다. 천연옷감에 천연염색으로 만들어진 옷들이라 비싸지 않을까 하며 가격을 물어보니 특별하게 비싼 것은 아닌 거로 생각되었다. 소품으로 자연 스카프와 진열된 옷들과 어울릴 만한 가죽 소재의 단화, 겨울 부추까지 갖추어 진열대에 놓여 있었다. 

호객 행위로 사람을 불편하게 하지도 않으면서 고요하게 가게 안의 옷들을 다리고 매만지는 것이 “연두” 쥔장의 본 모습인 것 같아 신뢰 이상의 마음이 앞서 거두절미하고 춘천에 보따리를 풀고 사는 이유를 넌지시 여쭈었다. 단추를 모으던 순정한 그 여인이 이 골목에 주저앉아 연두지기가 되어 늙어가고 있노라고. 서울이 연고인 쥔장은 학연도 지연도 없는 이곳에 살고 있는 이유를…. 가게 이름 연두처럼 사계절이 아름답고, 가까운 곳에 산과 들이 있어 언제든지 자연과의 소통할 수 있어 숨이 쉬어지는 삶을 유지할 수 있고, 간간이 들르는 각층의 사람들이 들려주는 서면 강가의 저녁노을 이야기도 내가 춘천에 사는 이유라고 시상을 살짝 들켜 주시는 거로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대책 없는 춘천사랑꾼이 이 골목에 터잡이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발견하다니 조금 늦은 감이 드는 느낌은 뭘까? 시원하게 뻗어 있는 번듯한 거리에 당당한 마네킹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북적대는 옷 가게는 아니지만, 가게 앞을 지나는 수고한 춘천사람들에게 뛰어다니며 술래잡기와 그림자 밟기, 사방치기를 하던 어릴 적 그리움을 소환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추억선물을 파는 가게라고 명명하고 싶다. 

지난여름 골목길 경계 팬스에 가득하게 피워 내던 나팔꽃을, 바람에 날려 가게 앞 데크에 몰려오던 노란 은행잎을 그리워하며 가게 문을 들어서는 춘천 여인들의 이야기를 자주 듣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방문 기념이라며 보송한 겨울 양말 한 켤레를 덤으로 가방에 넣어 주시는 연두 쥔장의 융숭한 배웅을 받으며 가게를 나왔다. 술술 풀어내는 천연염색의 매력에, 춘천사랑꾼 이야기에 취한 하루였다.

석사동 642-5 / 010-2777-1315

성순옥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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