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욱 소설가 《세 남자의 겨울》로 춘천문학상 수상

이병욱(71) 소설가가 장편 《세 남자의 겨울》로 춘천문인협회(회장 장승진)가 주관한 제20회 춘천문학상을 수상했다.

2009년 종합문예지 《뿌리》지로 등단, 단편소설집 《숨죽이는 갈대밭》(2016), 중단편소설집 《K의 고개》(2018) 등을 펴내온 이 소설가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세 남자의 겨울》에서 문학을 사랑하는 세 남자, ‘나’와 ‘외수 형’ 그리고 “김유정 문인비 건립 같은 돈이 되지 않는 일로 식구들을 힘들게 만든” 아버지의 얽히고설킨 삶의 한 지점을 1970년대 춘천의 시대상 속에 진솔하게 그리며 인간의 존엄성과 존재의 고독을 깊게 파헤쳤다. 다음은 이병욱 작가와의 일문일답이다.

작가로서 첫 장편소설로 첫 수상을 했다. 소감은?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의 책꽂이에 빼곡히 꽂힌 월간 《현대문학》으로 문학에 빠져 늘 소설가를 꿈꿨지만, 평생 소설 한 편 못 쓰고 죽겠구나 싶어서 2004년 54세 되던 해 스스로 교직을 떠났다. 명퇴만 하면 글이 나올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도무지 글이 나오지 않았다. 머릿속은 까맣고 아무 생각이 나오지 않았다. 이날을 위해 아이디어를 모은 노트를 펼쳐봐도 죄다 실망스러운 것들이었다. 착각했었고 의욕만 앞섰다. 매일 술만 먹었다. 

그러다 2009년 한겨울, 자포자기 심정으로 술에 취해 강촌의 가파른 봉우리 강선봉에 나쁜 마음을 먹고 올랐다. 하지만 삶을 내려놓는 일도 맘대로 안되더라. (웃음) 그런데 그 순간 기적처럼 글이 나오기 시작했다. 막다른 곳에 몰리자 소설이 써지더라. 그렇게 나온 게 단편 〈산그늘〉이다. 그 작품을 계기로 등단을 하게 됐고 이후 다시 부지런히 단편을 쓰고 모아서 《숨죽이는 갈대밭》(2016)을 냈다. 

책이 나왔을 때 사람들이 주목해주고 소설가로 인정해주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내가 또 착각했었다. (웃음) 이미 세상은 바뀌었고 문학이 조명을 받는 시대가 아니었다. 두 번째 소설집을 펴내고서도 내가 과연 소설가인가? 회의감은 계속됐다. 그러던 중에 누군가가 ‘소설가라면 장편소설을 써야 한다’고 뼈있는 조언을 해줬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장편소설에 도전했고 2년 동안 매달려 올봄에 《세 남자의 겨울》을 펴냈다. 다행히 반응이 좋았다. 누구보다 교직 명퇴와 글쓰기를 허락해준 나의 첫 독자인 아내에게 작게나마 보답을 한 것 같아 기쁘다. 특히 이제야 비로소 나 자신을 소설가로 인정할 수 있게 됐다.

첫 장편 소재로 이외수 작가와의 이야기를 담게 된 계기는?

책에서 구구절절하게 그렸듯이 나와 외수 형은 참 애증의 관계다. (웃음)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했다. 《벽오금학도》(1992)가 나왔을 때 세상은 주례사비평을 했지만 나는 전혀 감동이 없다며 혹평했었다. 외수 형은 호탕하게 웃었지만, 그 일로 오랫동안 다시 소원해졌다. 다시 긴 시간이 지나 감성마을로 찾아가 쇠락해진 형을 다시 만났다. 이후 투병 중인 형을 마주했을 때 한 시대가 저무는 느낌을 받았다. 그 순간 외수 형과 함께 살았을 때, 형이 관계가 무너진 나와 아버지를 화해시키려고 난로 앞에 부자를 마주 앉혔던 오래전 일이 한 장의 흑백사진처럼 떠올랐다. 그 한 장면이 시발점이 됐다. 그 순간이 떠오르자 신기하게도 옛 기억이 모두 되살아났다. 그래서 의암호반에 김유정 문인비를 세웠고 도예총 회장까지 역임했지만, 집안 형편을 어렵게 만들고 30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와 이외수 작가, 나까지 세 사람이 함께 보낸 1973년 겨울을 더 늦기 전에 작품으로 써보자 결심을 했다.

두 사람 외에 소설가로 성장하는데 자극을 준 사람이 있나?

박계순 소설가다. 앞서 말한 것처럼 도무지 글이 써지지 않아 죽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러다 간신히 첫 소설집을 냈을 때 오랫동안 소식이 끊겼던 그를 다시 만났다. 내가 강원대 국어교육과 1학년 때 서울에서 무용을 전공하다 고향으로 내려와 다른 학과로 편입해 다니던 박계순 선배가 학보에 실린 내 글을 보고 먼저 다가와 용기를 주었었다. 문학을 중심으로 참 많은 대화를 나눴다. 하지만 선배는 학기가 바뀌고 자퇴를 했다. 이후 아주 오랫동안 소식이 끊겼다.

세월이 흘러 내 책을 우연히 본 선배가 연락을 해왔다. 문학이 다시 인연을 이어줬다. 이미 훌륭한 소설가가 된 선배는 문학을 놓지 않은 나와 내 소설을 칭찬해주고 용기를 심어줬다. 박 선배 때문에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 

춘천의 문학 환경은 어떤가?

지역에서 글을 쓰는 게 쉽지 않은 일이다. 아니 지역뿐만 아니라 수도권이라고 다를 바 없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누구나 수월하게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시대이기도 하다. 과연 그만큼 작품의 질도 높아졌는지 나와 모두가 곰곰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오랜 시간 교단에도 섰다. 현 교육에 대해 조언한다면

진보나 보수나 교육정책은 정답이 없다. 시류에 흔들리지 않아야 할 것은 교사의 진정성이다. 교사가 진심으로 학생을 대해야 한다.

앞으로의 계획은 무언가?

있기는 하지만 입 밖으로 꺼내면 왠지 신기루처럼 사라질 것 같아서 말하지 않겠다. (웃음) 다만 감동을 주는 작품을 쓰고 싶다.

박종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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