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성(전 정의당 강원도당 부위원장) 

초등학교 돌봄교실에 컵과일 간식을 배달하고 있다. 새벽 5시쯤 물류창고에 도착해 1톤 냉장탑차에 물건을 싣는다. 오전 중 배송을 마쳐야 하기에 동선을 잘 짜서 부지런히 배달을 한다. 평창은 오후 3시쯤, 정선과 삼척은 오후 4시가 다 되어서야 끝난다. 주 4일만 일해 전업으로 삼기에는 수입이 넉넉지 않다. 하지만 주 3일은 가족과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 나에게는 괜찮은 근무조건이다. 다만 딱 한 가지 어려움이 있다. 바로 졸음운전이다.

짧게는 360km에서 길게는 550km, 매일 10~11시간 정도 차를 탄다. 새벽에 졸린 눈을 비비고 나와 지루한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졸음이 찾아온다. 잠을 쫓기 위해 히터를 끄고 창문을 열어보지만 소음이 커 금방 닫는다. 네비로 졸음쉼터까지 남은 시간을 수시로 확인하면서 무거운 눈꺼풀에 힘을 준다.

졸음쉼터에 즐비하게 늘어선 트럭들 사이에 내 차를 끼워 맞추고 알람을 맞춘다. 15분 정도 맞추면 너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물건이 밀리면 안 된다는 생각에 10분으로 줄이고 쪽잠을 청한다. 잠에 막 들었을 때 야속하게도 알람이 울린다. 졸린 눈을 비비며 다시 운전대를 잡는다.

가끔 배정학교 수가 늘어날 때면 마음이 급해진다. 정해진 시간 내에 물건을 다 소화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페달을 좀 더 밟고 쪽잠을 더 줄인다. 이런 날은 피로가 쉽사리 해소되지 않는다.

최근 화물노동자들이 안전운임제를 요구하며 파업을 했다. 안전운임제는 과로, 과속, 과적운행을 방지하고 교통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운임을 결정하고 공표하는 제도이다. 화물노동자들의 최저임금이라고도 할 수 있다. 운송료가 낮을수록 화물노동자들은 생활비를 맞추기 위해 차를 더 타야 하고, 그만큼 휴게시간이 줄어 도로 위 모든 운전자들은 위험에 내몰리게 된다.

안전운임제가 시행되면 도로는 안전해진다. 국토교통부 조사에 따르면 안전운임제 시행 후 12시간 이상 운행비율이 컨테이너는 시행 전 29.1%에서 시행 후 1.4%로, 시멘트차량은 50%에서 27.4%로 대폭 줄었다. 운임이 1만원 오르면 사고가 3.2% 줄고, 보험료(지출)이 1만원 오르면 6.1% 높아진다. 같은 거리를 1시간 더 여유 있게 가면 사고가 17% 줄고, 화물적재율이 1% 늘어날 때마다 사고는 0.72% 증가한다. 정부는 사회적 비용 증가를 이유로 안전운임제를 반대하지만, 안전운임제를 시행하면 무리한 운행이 줄어 인명피해가 줄고 사고처리 같은 사회적 비용이 줄어든다. 지난 11월 교통사고 사망자 90%가 졸음운전으로 사망했다. 올해 사망자 71명 중 3분의 2인 46명이 화물차 사고로 발생했다. 화물노동자의 안전은 곧 우리 모두의 안전이다.

정부와 여당은 화물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를 무시하고 노조와의 대화 자체를 거부했다. 위헌적 소지가 있는 업무개시명령으로 화물노동자들에게 강제노동을 시키고, 급기야는 그들이 제시한 안전운임제 3년 연장안마저도 취소해버렸다. 경제손실이 몇조 단위라며 대기업 화주들의 이익만을 대변하고 노동자를, 국민 모두를 위험에 내몰았다.

파업은 철회되었지만, 안전사회를 향한 화물노동자들의 투쟁은 계속된다. 안전운임제 보장과 품목, 차종확대로 모든 화물노동자가 알람 시간을 넉넉하게 맞추고 쉴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모든 국민이 도로 위에서, 더욱더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이효성(전 정의당 강원도당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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