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 / 김영민 지음 / 사회평론 펴냄 

‘우주가 이처럼 순수한 양자 요동으로 시작했다면, 인간의 존재에 어떤 거창한 우주적 규모의 목적이 있을 리 없다. 어쩌다 보니 우연히 존재하게 되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나나, 당신이나, 지구나, 태양이나, 우리 은하나 결국 모두는 하나같이 빈칸의 후예다’ 김범준, 《보이지 않아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호모불라(homobulla)’ - 인생, 한낱 덧없는 거품이라는 표현이다. 아무리 열정적인 성애도 시간이 흐르면 거품처럼 사라지며, 아무리 귀한 만남도 시간 속에 풍화된다. 알베르 카뮈는 필멸의 존재인 인간이 ‘왜 자살하지 않는가?’라고 되묻는다. 그 끝나지 않는 고통을 향해서 다시 걸어 내려올 수 있는 용기. 인간 실존의 위대함은 바로 그 지점에서 생겨난다. 이 책은 소멸해서 더 소중한 존재, 두 번 다시 반복할 수 없는 소중한 삶과 필연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허무와 더불어 사는 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목표로 할 것은 이 하기 싫은 일을 해치우고 보상으로 받을 여가가 아니다. 구원은 비천하고 무의미한 노동을 즐길만한 노동으로 만드는 데서 올 것이다. 끝없이 독촉해대는 생활의 속도에 굴복하지 않으려는 몸짓, 구체성을 무시한 난폭한 일반화에 저항하는 훈련, 서둘러 판단하지 않고 구체적인 양상을 집요하게 응시하는 것, 그것은 신산한 삶의 시간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레시피다.’ 본책, 4장 〈오래 살아 신선이 된다는 것〉 176쪽.

《로빈슨 크루소》의 저자 대니얼 디포의 표현처럼, ‘마치 매일의 양식이 노곤한 삶의 유일한 목적이고, 노곤한 인생 속에서만 매일의 양식이 얻어지는 것처럼, 일하기 위해 살고, 살기 위해 일하는 슬픔의 쳇바퀴를 돌리는 일상에서 구원되는 것’이야말로 허무를 직면하는 현명한 태도다. 저자는 인간에게 희망, 선의, 의미가 언제나 삶의 정답은 아니라고 말한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속으로는 이미 탈진 상태이거나 세상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하거나 텅 비어버린 이들에게 희망과 선의, 의미를 가지라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렇기에 저자는 선의 없이도, 희망 없이도, 의미 없이도, 시간을 조용히 흘려보낼 수 있는 상태를 꿈꾼다. 목적이 없어도 되는 삶을 원한다. 삶을 살고 싶지, 삶이란 과제를 수행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저자의 삶에 대한 태도는 우리에게 허무와 더불어 살아가는 삶이 무엇인지 그 일면을 보여준다.

‘악착같이 쉬고 최선을 다해 설렁설렁 살아야 한다. 목적 없는 삶도 마찬가지다. 최선을 다해야 목적 없이 살 수 있다. 꼭 목적이 없어야만 한다는 건 아니다. 나는 목적 없어도 되는 삶을 원한다. 나는 삶을 살고 싶지, 삶이란 과제를 수행하고 싶지 않으므로...  본책, 8장 〈인생을 즐긴다는 것〉 291쪽

류재량(광장서적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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