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내 최초 실태조사 시행 예상
상위법 마련을 위한 움직임도 활발

춘천시 경계선지능인에 대한 지원이 가시화되고 있다.

‘경계선지능인’은 지적장애에 해당하진 않지만, 평균 지능에 도달하지 못하는 인지능력으로 인해 소속되어 있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지원과 보호가 필요한 사람을 말한다. 장애인으로 분류되지도 않고 쉽게 눈에 띄지 않기 때문에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경계선지능인의 생애주기별 어려움에 대해 설명하는 박현숙 경계선지능연구소 소장. 유튜브 ‘허영TV’에서 볼 수 있다.

지난 춘천시의회 321회 임시회에서 김지숙 의원이 대표발의한 ‘춘천시 경계선지능인 지원 조례안’이 올라왔지만 아직 상위법이 마련돼 있지 않고 실태조사가 선행돼야 한다는 등의 이유로 부결된 바 있다.

이번 춘천시의회 322회 정례회에서는 복지환경위원회가 춘천시가 제출한 경계선지능인 관련 연구용역비 5천만 원을 통과시켜 본격적인 실태조사가 시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상위법 마련을 위한 움직임도 활발하다. 지난 15일에는 국회의원회관 제9간담회의실에서 ‘경계선지능인법 입법 준비 토론회’가 개최됐다. 허영 의원(춘천·철원·화천·양구갑),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위원장 정춘숙 의원(용인시 병), 동 위원회 간사 강훈식 의원(아산시 을), 춘천 경계선지능인 지원센터 ‘느린소리(대표 최수진)’가 공동 주최한 이번 토론회에는 ‘경계선지능인 생애주기지원의 필요성’, ‘경계선지능인과 관련 지원제도 현황’, ‘경계선지능인법의 바람직한 입법 방향’ 등이 논의됐다.

기조 발제를 맡은 박현숙 경계선지능연구소 소장은 한 경계선지능인이 평생을 살아오며 어려움을 겪은 실제 사례를 시기별로 자세히 소개하며 생애주기별 지원제도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성인 경계선지능인 A씨(남 26세, IQ 73)는 △출생 시, 난산으로 인해 좌측 뒤통수 부분이 함몰되어 있음, 난산으로 인한 뇌 손상으로 경계선지능인이 되는 경우가 많음 △영유아기, 말이 늦고 유치원에서 공격적 행동 등으로 주목받기 시작 △초등학생 시기, 친구들로부터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함, 교사의 특수반 권유를 거부하고 부모가 억지로 공부를 시켰지만 학습효과가 없고 부모와의 관계 소원, 5학년에는 산만하고 충동적인 행동으로 ADHD를 진단받고 약물 처방을 시행했지만 효과가 없었음 △중학생 시기, 학교생활이 어려워 지면서 우울, 강박 증가, 전교 최하위 성적으로 비평준화지역의 특성화고 진학 △고등학생 시기, 거친 아이들이 많은 고등학교에서 매우 어려운 학창 시절 보냄, 학교의 시험 난이도가 낮아 3~4등급 유지, 수시전형으로 전문대 공대 진학 △대학생 시기, 수업을 따라가지 못해 2학년에 중퇴 △군복무 시기, 훈련소에서 관심병사, 자대배치 이후 따돌림, 폭언, 폭행으로 자살 시도, 옮겨간 부대에서 현역 복무 부적합 판정, 공익근무 중에도 괴롭힘 당함 △청년기, 30여 개 아르바이트 및 직장을 전전했지만 전부 해고 통보를 받았고 한 달을 넘기기도 힘듦.

A씨는 현재 생활비를 벌기 위해 빈 병을 모아 팔고 있지만 어르신들의 일을 뺏고 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또 각고의 노력으로 폴리텍 대학에 들어갔지만 이전의 상황이 반복될까봐 극도로 불안한 상황이라고 한다. A씨의 동생은 “형이랑 맨날 싸우고 형 때문에 집안이 다 망가졌다. 국가기관에 문의하고 도움도 청해봤다. 기관에서는 안타깝지만 장애가 없어서 도움을 줄 수 없다고 했다”고 박 소장에게 털어놓았다고 한다. 복지 사각지대가 분명해보이는 대목이다.

허영 의원은 “경계선지능인의 한계를 규정하는 법이 아닌, 한계를 극복하는 데에 도움을 주는 법이 되도록 살피겠다”면서 “해외에서 경계선지능인에 대한 법제와 관련해서는 우리의 사례를 참고할 수 있도록 좋은 법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홍석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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