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성우 문학평론가

권성우 평론가는 서울대 국문학과에서 학·석·박사를 마쳤고 198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분에 당선된 후 30여 년간 한국 문단에서 탁월한 평론가로 자리매김해왔다. ‘김영현 논쟁’, ‘문학권력 논쟁’, ‘근대문학의 종언 논쟁’ 등에 주도적으로 참여했으며 《문예중앙》, 《세계의 문학》, 《크리티카》, 《사회비평》, 《문학수첩》 등의 편집위원을 역임했다. 2003년부터 숙명여대에서 제자들을 양성하고 있으며 김환태평론문학상(2008), 임화문학예술상(2017) 등을 수상했다. 《비평의 매혹》, 《모더니티와 타자의 현상학》, 《비평과 권력》, 《비평의 희망》, 《논쟁과 상처》, 《횡단과 경계》, 《낭만적 망명》, 《비평의 고독》, 《비정성시를 만나던 푸르스름한 저녁》, 《서경식 다시 읽기》 등을 펴냈다. 김유정 문학촌 개관 20주년 ‘대한민국 문인 아카이브’ 사업으로 전석순 작가(김유정 문학촌 멘토 작가)와 기자는 권성우 평론가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Q. 서울 명동의 유년 시절은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정말 특별한 유년을 보냈습니다. 제 또래 특히 문인 중에는 드문 경험일 겁니다. 경상도에서 상경한 아버지가 친척의 회사에 다니며 그 회사가 있는 명동의 한 건물 옥탑 집에서 사셨어요. 내가 태어나 9살이 될 때까지 그 집에서 살았어요. 

명동에는 예나 지금이나 가정집이 거의 없잖아요? 그래서 동네에 친구가 없었어요. 친동생을 제외하고는 형처럼 따른 구두닦이가 유일한 친구였어요. 또래와 관계를 형성할 기회가 거의 없었죠. 지금도 낯선 사람을 만나면 약간 긴장하는 습성이 있는데 그런 환경에서 영향을 받은 것 같습니다. 유일한 장난감은 어머님이 사주신 계몽사 《소년소녀세계문학전집》이었어요. 덕분에 책 읽기에 대한 열망이 커지고 한편으로는 도심을 벗어나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뭔가 갇혀 있다는 생각 또 친구가 없었던 유년 시절이 저의 기질과 성격을 형성하고 삶을 문학으로 이끌었습니다. 대학 4학년 때 ‘대학문학상’에 운 좋게 당선됐는데 심사위원인 비평가 (故) 김현 선생께서 “대도시 한복판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문학을 할 수 있겠냐?”라며 농담조로 말씀하면서 격려하셨어요. 그 격려가 정말 큰 힘을 주었습니다.

Q. 구체적인 추억을 모아 책으로 펴내면 재밌을 것 같은데요?

명동 번화가 이곳저곳을 막 뛰어다니다 교통사고를 당할 뻔한 적도 여러 번이었고, 대연각 호텔의 화재 참사를 코앞에서 본 기억도 아주 생생합니다. 옥탑에서 바라본 명동은 지금과는 전혀 달라서 양장점·선술집·의상실·음악다방 등 지금과는 전혀 다른 풍속이 펼쳐졌습니다. 어머니와 전차를 탔던 기억, 전차 삯이 5원이었는데 1968년까지 전차가 다녔어요. 사보이호텔 등 세월을 버티고 남아 있는 건물의 옛 모습도 생생합니다. 그래서 유년의 기억 속 명동을 산문집에 담아보자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하고 있는데 언제쯤 현실로 옮길지 모르겠습니다. (웃음)

Q. 문학에 입문 후 비평을 선택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1982년 대학에 들어갔을 때 커다란 지적 자극을 기대했지만, 수업은 기대만큼 재미가 없었어요. 그러다 여러 사상과 철학, 근대문학이 용광로처럼 스며든, 인생을 결정하게 된 강의를 만났습니다. 2018년에 돌아가신 김윤식 교수의 ‘한국 근대문학의 이해’입니다. 한국 문학이 정말 매력적이고 지적으로 풍요로운 공부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았어요. 또 김윤식 선생의 《문학과 미술 사이》, 김현 선생의 《김현 예술 기행》 등 이성과 감성이 조화된 예술 기행에 매료됐습니다. 그분들이 모두 비평가예요. 그들이 둘러본 먼 곳에 대한 그리움과 낭만적 정서가 고양되며 나도 그런 글을 쓰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습니다.

Q. 글을 써오며 지켜온 어떤 철칙이 있나요?

문체와 문장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물론 내용과 주제도 중요한데 같은 이야기여도 어떤 문체와 문장이냐를 정말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것이 변하지 않는 원칙입니다.

그래서 글을 힘겹게 써요. 종일 써도 원고지 한 열 매쯤 될까 말까 합니다. 지금까지 마감을 지킨 적이 거의 없어요. ‘최선을 다하고 싶다’, ‘끝까지 손을 보고 싶다’라는 장인 정신 같은 욕망이 강한 것 같아요. 안 그러고 싶은데 그게 안 됩니다. (웃음) 글을 쓸 때마다 모두 소진한 느낌을 받으면서도 늘 새로운 글을 쓰고 싶은 열망이 생깁니다. 기질이자 운명인 것 같습니다. 5년 전 제9회 임화문학예술상을 받았을 때 유성호 심사위원이 저의 문체를 주목한 적이 있는데 정말 반가웠어요. (웃음)

Q. 글을 쓰고 읽는 방식에 변화가 있나요?

문인 중에 비교적 얼리 어답터에 해당합니다. SNS도 오래 하고 있고 최근에는 e북도 많이 읽습니다. 매월 구매 또는 기증받는 책을 합치면 많게는 일 년에 300여 권이 생깁니다. 도무지 감당할 수 없어요. 분명히 소장하고 있는데 어디 있는지 찾지 못해 새로 사는 책도 많습니다. 그래서 최근 새 연구실로 이사 오면서 앞으로 다시 읽을 가능성이 없는 책들은 모두 정리했어요. 애장하고 싶은 건 책으로 구매하지만 가능한 e북을 선택합니다. e북은 공간도 절약되고 검색도 수월합니다. 그래도 여전히 집에 1만 권 정도의 책이 쌓여있어서 가족한테 늘 미안하죠. 글쓰기도 80년대 후반까지 원고지에 썼지만, 현재는 워드로만 씁니다. 이제는 웬만한 편지도 자필로 못 쓰겠어요. (웃음)  

Q. 현재 한국 문학을 평가한다면?

다양한 기관이 한국 문학을 해외에 열심히 소개해서 한국 문학의 존재감이 꽤 높아지고 있습니다. 또 소재·주제·형식 등이 정말 다양해진 것도 긍정적입니다. 하지만 오랜 시간 장인의 열정을 통해 완성된 문제작이나 걸작은 줄어들고 있어요. 깊은 사유, 사회에 대한 치열한 대응 등 문학의 역할이 줄어드는 점은 아쉽습니다. 그래서 문학 고유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 작품을 응원하고 의미 부여하는 비평을 쓰고 싶습니다.

Q. 좋은 비평은 어떤 건가요?

비평도 하나의 독자적인 예술적 글쓰기입니다. 건강한 비평은 그 자체로 매력적인 읽을거리가 되어 지적인 사유의 쾌락을 주고 논문이나 다른 글쓰기와 차별성도 있어야 합니다. 또 작품의 메시지를 정확하게 파악하면서 애정 어린 비판과 문제를 제기하는 비평이 좋은 비평입니다. 독자들의 눈치를 봐서는 안 되지만 독자들과 함께 호흡하는 태도는 필요합니다.

Q. 그런 비평을 해오며 기쁘고 힘든 일도 많았겠습니다.

김석범, 조세희, 최일남, (故) 최인훈 등 경외하고 정말 사랑하는 작가들이 저의 비평을 아끼고 좋아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정말 기뻤습니다. 그런데 회한이 들 때도 있습니다. 

최인훈 작가를 정말 좋아했어요. 논문도 5편이나 썼죠. 늘 직접 뵙고 궁금한 것을 여쭙고 싶었지만 게으름과 쑥스러움으로 감히 뵙자는 전화도 못 드렸어요. 그러다 결국 돌아가실 때까지 한 번도 못 뵈었습니다. 돌아가신 후 추도사를 쓰고 선생의 아드님을 만날 기회가 있었어요. 자택 선생의 책들 바로 옆에 저의 책 네 권이 꽂혀 있더라고요. 펼쳐보니 곳곳에 수많은 형광펜 표시와 메모가 있었어요. 선생께서 제 글을 너무 좋아하셨고 아주 중요한 비평가로 아끼셨다는 말씀을 전해 듣고 먹먹해졌어요. 생전에 뵙고 많은 얘기를 들었더라면 훗날 선생에 관해 훨씬 풍성한 책을 쓸 텐데 게으름과 쑥스러움을 오랫동안 원망했습니다.

힘들 때는 손해를 보더라도 옳은 말, 꼭 필요한 비판이라고 했는데 아무 반응도 없거나 어설픈 양비론으로 빠질 때입니다. 이해는 되지만 ‘논쟁이라는 게 이렇게 어렵구나’라며 탄식하고 상처받기도 했습니다. 문단의 그런 완강한 구조에 환멸과 절망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Q. 문예지가 나아갈 방향은 무언가요?

다양성입니다. 예전에는 《창작과 비평》과 《문학과 사회》가 논쟁도 펼쳤지만, 요즘은 문예지 만의 특성과 품격이 많이 사그라들고 대체로 중요한 작가들을 공유하면서 비슷해진 느낌입니다. 문예지만의 정신과 입장을 통해 개성과 차별성을 가진 문예지가 많아져야 그만큼 한국 문학도 다양하고 풍성해질 겁니다. 또 비평 전문 문예지도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Q. 문학관의 사회적 역할은 무언가요?

전국의 많은 문학관은 문학에서 멀어진 대중과 독자를 다시 불러모으고 좋은 책을 찾아 읽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역할을 맡아야 합니다. 거기에 문학관 나름의 건축 양식, 전시 방식, 기획 등 차별성까지 갖추면 더 좋을 겁니다. 

Q. 교수로서 한국 대학교육을 평가한다면? 

외국의 대학에 비해서 실용성이 지나치게 강조되고 있어요. 물론 고색창연한 상아탑을 그대로 유지할 수는 없지만 변하지 않아야 할 대학만의 전통과 어떤 쓰임새, 역할은 여전히 필요합니다. 문학을 비롯한 인문학 정신, 사회에 대한 기여와 비판 등을 잃고 있어요. 대학이 자본의 논리와 실용성만으로 운영되면 안 됩니다.

 Q. 비평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당부의 말은? 

이 시대에 문학을 하려면 외로움을 온전히 견딜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특히 비평은 다른 장르보다도 더 외롭습니다. 제가 《비평의 고독》(2016)에서도 인용했듯이, 게오르그 루카치(헝가리·1885~1971)는 “작가에게 ‘좋은’ 비평가는 자기를 칭찬하고 자기 이웃을 공격하는 사람이고, ‘나쁜’ 비평가는 자기를 비판하거나 이웃을 칭찬하는 사람이다”라며 비평을 둘러싼 진실을 예리하게 갈파했습니다. 주체성과 비평적 자의식을 가지고 글을 써야 합니다. 안 그러면 휘둘리고 상처를 받습니다. 비평가가 되려는 사람은 꼭 명심해야 합니다.

Q. 문학과 비평에 바라는 점과 향후 계획은?

이미 오래전 최윤 소설가가 1992년에 《회색 눈사람》으로 동인문학상을 받으며 “많은 사람이 문학을 떠나는 이 시기에 내가 소설을 쓰고 문학을 하는 것은 커다란 행운이다. 이제야 진짜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 그냥 유행이기 때문에 문학을 하는 게 아니라 진짜 사랑하는 사람만이 문학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시대이기 때문이다”라고 소감을 밝혔어요. 현재도 같습니다. 근본적인 애정과 사랑을 지닌 사람만이 문학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인류가 존재하고 사유를 하는 한 문자의 역할, 문학의 역할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문인들은 문학만이 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 자의식을 갖고 묵묵히 자기의 글을 계속 쓰는 게 이 시대의 작가와 비평가의 길이 아닌가 싶습니다. 

앞으로 단행본 위주의 작업을 계획하고 있어요. 우선 내년 가을쯤에는 재일 한인 소설가 김석범 작가의 대하소설 《화산도》에 대한 학술서를 펴낼 계획입니다. 제주 4.3을 다루어 일본에서도 높이 평가받은 기념비적인 작품입니다. 또 최인훈 작가와 재일 디아스포라 지식인 서경식 선생에 대한 단행본도 계획하고 있고요, 두 번째 산문집과 새로운 비평집도 차근차근 낼 계획입니다.

정리 박종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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