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태(춘천 금산초 교사, 현 전교조강원지부 정책실장)

지난해 11월 9일 교육부는 「2022 개정교육과정」을 행정 예고했습니다. 국민들과 함께하는 교육과정을 만들겠다고 홍보하며 온라인 의견수렴 기간까지 두는 등 요란했지만 결과는 너무나 초라합니다. 오랜 토론과 숙의 끝에 반영하기로 한 ‘생태전환교육’과 ‘성평등교육’을 모두 빼버렸습니다. 대신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노동자를 ‘근로자’로 바꾸는 등 중요한 개념과 언어를 현 정부의 입맛에 맞게 바꾸는 일에만 주력했습니다. 교육부 직원이 역사교과 교육과정 연구진 회의에서 이제 ‘정치의 시간’이라고까지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누더기가 된 교육과정을 받아들여야 하는 교육계로서는 새삼 교육의 정치적 중립의 허무함을 느끼며 자괴감을 느끼게 하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가장 안타까운 건 ‘노동’의 삭제입니다. 평범한 우리 주변의 사람들이 흘리는 땀의 가치를 학생들에게 가르치고자 노력했던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기대는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어느 노랫말처럼 ‘노동’ 없이는 생산이 없고, 생산 없이는 생존이 없는 데 이처럼 소중한 말을 국가교육과정에 담을 수 없다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몇몇 학생들은 고등학교 때부터 사업장에서 치열한 ‘노동’을 하며 살아갈 텐데, 자신의 삶을 꾸리는 기본 조건이 무엇이며 어떠해야 하는가를 가르치지 못한다면 학교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다시 묻게 됩니다. 

윤석열 정부가 교과서에서 ‘노동’이라는 단어를 제거하고자 하는 이유는 명백합니다. 기업의 입장만을 대변하는 정부에게 ‘노동’은 금기어나 부정적인 언어로 남아있어야 합니다. 배움을 시작하는 단계에서부터 그렇게 된다면 더더욱 좋습니다. 노동자가 자신을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인 근로자(勤勞者)로 부르지 않고 당당한 생산의 주체로 인식하는 순간 기업주인 자본가는 이전과는 사뭇 다른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최근 2022 교육과정을 두고 벌어진 사달을 보고 있자니 우리나라에는 총명한 학생들이 자라나 똑똑한 시민들로 성장하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교육과정에 ‘노동’ 없다는 건 학생들이 자신을 둘러싼 삶의 조건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교육과정에 ‘노동’이 없다는 건 헌법상 권리인 노동 3권에 대해 올바른 시각을 정립하는 일을 방해합니다. 교육과정에서 ‘노동’을 일부러 가르치지 않겠다는 건 정부가 나서서 민주시민의 자존감을 훼손하고 억압과 굴종을 내면화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그것으로밖에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너무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자본과 권력이 교과서에 ‘노동’이라는 말을 넣지 않았다고 하여 교사가 가르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교사들은 움직이는 교육과정입니다. 교사의 마음과 생각에서 나오는 눈빛과 언어로 얼마든지 ‘노동’에 대해 가르칠 수 있고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인 인류의 이상이어야 하는지 가르칠 수 있습니다. 

중국의 작가 루쉰은 그의 소설 《고향》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지나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게 곧 길이 되는 것이다.” 

두 해 동안 소중한 지면을 저와 전교조강원지부에 허락해 준 《춘천사람들》에게 감사드립니다. 교육이라는 오묘한 산을 조금이나마 넘을 수 있었던 작은 오솔길이 되었었기를 바랍니다.

안상태(춘천 금산초 교사, 현 전교조강원지부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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