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정(시인)

그 시절 힘들고 가난하게 살았어도 아내는 여강 한배미들에서 동생들과 함께 지낼 때가 인생에서 가장 꽃 같고 아름다웠다고 말한 부분이었다. 남편인 자신에게도 그렇게 말했다. 예전에는 들어도 잘 이해하지 못했는데, 혼자였다면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함께 흔들리며 핀 꽃들로 거친 들판이 아름답고 그걸 견뎌낸 시간이 아름다웠을 것이다.

이순원 작가의 ‘서정적 추리소설’ 《박제사의 사랑》이다. 읽는 내내 경탄의 박수를 보내야 했던. 자살한 아내의 장례를 치르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아내. 그녀를 죽음에 이르게 한 범인이 밝혀지기 직전, 아내의 가장 행복했던 시절을 마주하는 장면이다. 박제사 박인수에게 아내의 자살은 어떤 이유에서건 당혹스럽고 낯선 현실이다. 그는 아내의 죽음과 관련된 진실을 하나씩 파헤쳐 가던 중 경주마를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의 모습”으로 박제하는 일을 맡게 되고 이는 죽은 아내의 삶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을 복원하는 과정을 통한 애도의 시간이기도 하다.         

소설 초반에 나는 아내 채수인의 사랑에 초점을 맞췄다. 고통과 죽음을 불사하면서까지 지키고 싶은 이가 있구나, 누구일까. 목숨보다 소중한 사랑이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통속적 사랑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존재가 분명히 등장할 거란 나의 어쭙잖은 추리는 소설 중반을 넘어서며 끝이 났다. 그리고 소설을 덮으며 채수인의 슬픈 인생에 나의 아름다웠던 시절을, 그리고 나와 함께 흔들리며 핀, 함께 견뎌준 꽃들을 떠올렸다. 버드내 개울가에서 우리에게 닥친 공통의 슬픔을 함께 견뎌준 꽃들. 동생들과 보낸 어린 시절을 불러내는 일. 즐거운 휴식의 시작이었고 ‘곁’에 대한 믿음이었으며 또 다른 사랑의 발견이었다.

문학은 기본적으로 결핍의 고통을 먹으며 발아한다. 그것을 슬픔으로 규정하고 존재와 부재 사이에서 동의할 수 있는 결핍을 수소문하게 되는 것이다. 존재하는 것들의 화법으로 부재한 것들의 과거를 불러와 존재하는 것들의 미래에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다. 모든 슬픔은 과거에 속한다. 지금, 이 순간조차도 슬픔은 과거의 것이며 그렇게 흘러갈 것이다. 우리가 보는 현재는 단지 믿고 싶은 가상현실일지도 모른다. 2022년의 모든 과거가 꽃의 회상일 리 없다. 적어도 삶을 위협하는 불행 앞에 무너지는 주인공은 되지 말자고, 그저 가장 꽃같이 아름다운 지금을 함께 살아가자고 용기 내어 말해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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