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인간이 대한민국 대통령이다. 이것도 천공이 시킨 건가. 나라의 운명이 벼랑 끝이다. 아이들 눈을 바라보지 못하겠다.


스님에게 길을 물었더니,

겨울바람은 북쪽에서 불고

봄바람은 남쪽에서 불겠지. 

이러신다. 

매화나무는 아직 귀를 닫고 있네.


어느 전생이었는지 아득하지만 우리가 이 계절에 처음 만났던 기억이 있다. 나무들이 세상을 향해 마지막 등불을 밝혀 드는 무렵이었다. 나는 조금 가벼운 절망을 앓고 있었고, 상심한 내부를 잘 들여다보기 위해 날마다 술집과 술집 사이에서 떠돌았다. 그럴수록 내 상처가 잘 보였다. 내 저항은 고작 세상의 변방 쪽으로 나를 데려다 눕히는 것이었다. 그러면 조금 안심이 되어서 울지 않고도 한 계절을 잘 견딜 수 있었다.

종종 우산도 없이 비를 맞았다. 우리가 처음 만난 것도 그런 것이었다. 아무런 예감도 없이 막다른 골목에서 운명과 맞닥뜨리는 것. 운명이 아니길 바라면서도 마침내 운명의 속살까지 다 비쳐 보이게 되는 것. 나는 잠시 망설였지만 곧 눈을 감고 운명이 내미는 칼끝을 받아들였다. 깊이 찔려서 무럭무럭 피 흘리고 싶은 낭패감조차 감미로웠다. 단 하루여도 좋을 지상의 날들이 11월의 구름처럼 지나갔다.

살아서 찬란한 것들은 위독하다. 꽃들은 곧 죽고, 잎사귀들은 속절없이 저문다. 나는 다시 술집으로 돌아왔다. 찬란하지 않아도 깊이 깊이 위독할 수 있는 나의 술자리로 나는 나를 데리고 돌아왔다. 잎사귀를 허물지 않고 겨울을 나는 나무는 병든 나무다. 스스로 잎사귀를 버리는 힘으로 나무는 겨울을 건너간다. 그리고 이 계절은 조금 가벼운 절망을 앓기에 얼마나 찬란한 시절인가.

류근(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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