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구 (문학박사, 춘천문화원 춘천학연구소장)

지난해 12월 하순 안중근 의사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 『영웅』이 개봉되어 화제를 모으고 있다. 다음은 영화 마지막 소개된 자막. 광복과 함께 조국으로 유해만이라도 돌아오고자 했던 안중근 의사의 유언은 고사하고, 시신이 묻힌 곳조차 찾지 못한 채 조국 광복 후 영웅의 염원은 수렁에 빠진 채 진행형이다.

안중근 의사가 백범 김구와 함께 의암 류인석 도맥과 학맥에 맞닿아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안중근 의사와 백범과는 세 살 차이가 나지만, 두 사람의 청년기 삶은 극명하게 대비 된다. 백범은 동학농민운동에 주도적으로 지휘하며 참여하였고, 안중근 의사는 사병을 조직하여 동학농민군을 진압한 아버지를 적극적으로 도왔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한학(漢學)을 바탕으로 스러져가는 대한의 모습을 처절하게 경험하고 독립투쟁을 전개하였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안중근 의사와 백범은 모두 황해도 해주 출신으로 후조(後彫) 고석로(高錫魯)와 연계가 있다. 후조 고석로는 성재(省齋) 류중교(柳重敎)의 고제(高弟)이고 의암 류인석과는 동문수학하였다. 백범은 후조 고석로의 제자였고 광복 후 의암 류인석의 묘소를 찾아 제자의 예를 갖추었다. 반면 안중근 의사는 후조의 직계 제자로는 보이지 않지만, 아버지 안태훈과는 교분이 두터웠으며 안씨 자제를 교육하기도 하였다.

의암 선생의 친자인 유해동 저술인 『의암류선생약사(毅菴柳先生略史)』에 안중근 의사와 관계된 부분을 정리하면, 첫째 안중근 의사가 조선십삼도의군도총재(朝鮮十三道義軍都總裁)인 의암 류인석 휘하에서 이갑(李甲), 왕창동(王昌東) 등과 함께 의무원(義務員)을 지냈다는 사실, 둘째 정재관이 안중근과 함께 맹령에 있는 의암 류인석을 찾아가서 이등박문의 암살계획을 상의한 후에 의암의 격려를 받았다는 사실, 셋째 안중근이 이등박문을 암살할 때 사용한 권총이 의암 류인석 휘하에서 큰 활동을 했던 이진용(李鎭龍)의 총이라는 사실 등이 기록되어 있다. 이것에 바탕을 두면 안중근 의사가 미완으로 남겨 놓은 『동양평화론』의 사상적 배경이 의암의 동양평화론에 맞닿아 있고 안의사가 법정에서 이등박문 저격의 배후로 언급한 김두성(金斗星)이란 인물의 실체가 의암 류인석임을 알게 해준다.

의암 류인석은 1909년 10월 26일 거사가 성공적으로 끝나자 블라디보스토크로 가서 축하연을 하였다고 전해지며, 이 무렵 지은 시와 시 서문이 있어 소개한다. 

남들이나 나나 다 한 가지 병통(病痛)을 피하여 면하기 어려운데 그것은 ‘아(我)’라는 한 글자에 있다. 옳고 그름을 말한다면 곧 내가 옳고 남이 그르다는 것이고, 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말한다면 곧 나는 할 수 있고 남은 할 수 없다는 것이며, 아는지 모르는지를 말하면서 곧 나만 알고 남은 모른다는 것이다. 다만 남들이 나 같지 않음을 한스러워하지만, 천만(千萬)이나 되는 사람들 속에서 나 같은 사람은 필연코 없을 것이다. 만약 그 속에서 나 같은 사람이 있다면 나라는 두 사람이 서로 대립하여 용납할 수 없게 된다. 이 병통을 제거하지 않는다면 천하의 일을 할 수 없게 된다. 無論人我 難免有一病 在一我字 言是不是 則我是而人不是 言能不能 則我能而人不能 言知不知 則我知而人不知 惟恨人不如我 千萬人 必無一人如我者 其有得如我者 兩我相對 卽不相容 不除此病 天下事無可爲 

我是我能亦我知    나만이 옳다 하고 할 수 있고 안다고 하며

於人千萬我如斯    천만의 사람에게 나 같기를 원하네

聖人無我誠難及    무아는 성인도 진실로 어려워하나니

有我我何玆甚爲    유아가 어찌하여 이토록 심할 손가

無人於我我人眞    눈앞에 사람 없이 나만이 진인이라며

人有我如方有人    남들도 나 같아야 사람이라 하는구나.

畢竟無人如我者    나 같은 사람이란 끝내 없으리니

於焉我獨獨夫身    그러면 나 홀로 독부(獨夫)가 되리로다

雖令人得與我同    사람이 나와 같아지길 구하더라도

兩我相逢豈相容    두 내가 만난다면 어찌 용납할 수 있으랴

度量恢恢人何見    도량 넓은 사람들은 어떻게 보시는지

辦天下事在一公    천하의 일 처리는 공정한데 달렸다네.

「자송하는 것을 시로 써서 여러 벗이 함께 화답하게 하노라(自訟有作要諸友共和)」

시와 서문에 남을 조선에 대입하고 나를 일본에 대입해보면, 조선이 일본 제국주의와는 결단코 양립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조선과 일본은 서로 다른 국가이니 하나가 되기를 구하는 것은, 똑같은 내가 서로에게 용납될 수 없으며 천하의 일 처리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함에 있음을 말하고 그것이 천하 일 처리의 공정이라고 하였다. 이것이 안중근 의사가 말하는 동양평화론에 잇닿는 교차점이기도 하다. 

 

허준구 (문학박사, 춘천문화원 춘천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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