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폴로 싸롱에는 서양 가수들의 팝송만 흘러나왔던 게 아니다. 송창식, 양희은의 노래도 흘러나오곤 했다. 양희은의 맑은 가을하늘 같은 목소리로 나오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너의 침묵에 메마른 나의 입술

차가운 네 눈길에 얼어붙은 내 발자국

돌아서는 나에게 사랑한단 말 대신에

안녕 안녕 목메인 그 한마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기에(하략)

송창식의 음울하게 나오던 ‘창 밖에는 비 오고요’는 또 어떠했던가. 

창밖에는 비 오고요

바람 불고요

그대의 귀여운 얼굴이

날 보고 있네요

창밖에는 낙엽 지고요

바람 불고요

그대의 핼쓱한 얼굴이(하략)

그렇다. 춘천 출신 대형 신인 가수 김추자의 ‘님은 먼 곳에’도 뜨겁게 흘러나왔다.

사랑한다고 말할 걸 그랬지

님이 아니면 못 산다 할 것을

사랑한다고 말할 걸 그랬지

망설이다가 가버린 사람

마음 주고 눈물 주고 꿈도 주고

멀어져 갔네(하략)

김추자는 사실 가수로 등장하기 전에도 그 이름이 춘천에서는 알려져 있었다, ‘춘천여고 응원단장 김추자’로 말이다. 60년대 말 춘천 시내의 여러 고등학교가 참가하는 체육대회가 공설운동장(나중에 춘천고등학교의 대운동장으로 바뀌었다.)에서 열리곤 했는데 그때마다 춘천여고 응원단장으로 앞에 나서서 신나는 응원 동작으로 그 이름을 떨친 게 계기다. 춘천여고에서 응원단장을 한 여학생이 한둘이 아니었을 텐데 유독 그녀만이 유명해진 건 바로 그 이름 때문이 아니었을까?

‘추자’라는 이름이 ‘춤을 추자’의 준말처럼 여겨졌던 거다.

데뷔 처음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를 불렀을 때에는 신인 여가수인가 보다 하는 정도의 인식이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랑한다고 말할 걸 그랬지’ 하면서‘님은 먼 곳에’ 노래가 나오면서 우리 고장의 대표적인 여학교 춘여고 출신이며 더구나 공설운동장 체육대회 때 화려한 몸짓을 보이던 응원단장 ‘김추자’라는 사실까지 뒤늦게 부각되었다.

딱히 즐길 거리도 없던 그 시절, 춘천의 갈 곳 없는 젊음들이 아폴로 싸롱 지하공간에 ‘땅 밑에 고인 물’처럼 모여 김추자 그녀의 애절한 노래에 시름을 달랬다. 

시끄러운 음악 속에서도 고고하게 시집(詩集)을 보는 여자애나, 그 여자애한테 접근했다가 낭패를 본 내 친구 녀석이나, 괜히 한쪽 팔을 깁스하고 날마다 문 열고 등장하던 남자애나… 모두 먼 곳에 있는 님을 그리고들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모습들은 각기 달랐지만 말이다.

내 젊은 날에 아폴로 싸롱이 있었다.

이병욱(작가, 춘천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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