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좌용 조합원

조합원데이트의 세 번째 손님입니다. 변좌용 조합원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인터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는데요. 그냥 이야기를 나누러 오는 줄 알고 편하게 있었어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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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원데이트는 편하게 이야기를 듣기 위해 마련한 코너이니 안심하세요. 타지에 있다가 춘천으로 돌아오셨다고 들었는데요?

맞아요. 제가 원래 성수고 15기예요. 56년생이에요. 원래 상고를 나와서 K대학교에 도전했는데, 다 실패했죠. 포기를 하고 있는데 교감 선생님이 너무 아깝다고 4년 장학금을 주는 S대학교를 보내줬어요. 입학을 했는데 한 교수님이 자기네 과로 오라는 거예요. 그래서 “무슨 과입니까?” 그랬더니만 임학과라는 거에요. 산림학과에요. 저는 그때 임학과가 뭔지도 몰랐어요. 그래서 임학과에 갔는데 반년 다니다 보니까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래서 군대로 날라버렸죠.

56년생이라니, 정말 젊어 보이네요. 제대해서 복학했나요?

군대 생활은 정말 즐거웠어요.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고, 무엇보다 그때까지 난 바다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는데 동해안경비사령부에서 복무를 하게 돼서 좋았죠. 바다를 쳐다보는 게 좋더라고요. 5.18이 터지고 며칠 있다가 제대했어요. 1980년 5월 25일. 그리고 S대학에 복학했죠. 솔직히 S대학이 당시에 수준이 높은 대학은 아니었어요. 그래도 좋은 점은 시간이 많았고 야간, 전문대가 있어서 듣고 싶은 강의는 쫓아다니면서 다 들을 수 있었다는 점이었어요. 한번은 조경학과에 가서 교수님한테 수업 듣고 싶다니까 깜짝 놀라는 거예요. 왜 왔냐고 물어서, 그냥 공부 좀 해보고 싶다고 했더니 그럼 들으래요. 그래서 기사 자격증도 땄죠. 공부가 그렇게 재밌더라고요.

대학교에 남아 공부를 계속할 생각은 없었나요?

공부는 좋았지만 집안 형편이 어려웠어요. 사실 우리 원주 변씨 집안은 이 지역에서 나름대로 전통 있는 가문이에요. 다들 잘 살았어요. 그런데 우리 집은 이북에 재산이 다 있었는데 춘천으로 내려왔거든요. 그러니 일단 취직을 해야겠더라고요. 그래도 공부에 미련이 남아서 친구들한테 “공부하면서 돈 벌 수 있는 회사가 어디냐?”하고 물어봤더니 제약회사밖에 없대요. 그래서 한미약품 공채 1기로 입사하게 된 거죠.

한미약품이 그때도 큰 기업이었나요?

아니에요. 이제 막 시작하는 작은 기업이었죠. 한미 약품에 지원한 이유도 재밌어요. 원래 3개 정도 제약회사를 보고 있었어요. 그중에는 한독제약도 있었어요. 그런데 한독제약이 한국, 독일 합자회사잖아요? 그래서 한미약품도 한국, 미국 합자회산 줄 알았어요. 하하하. 면접에서 그게 아니란 걸 알게 됐죠. 면접관한테 “한미약품은 한국이랑 미국 합자회사 아니에요?”하고 물었더니 한국 토종이래요. 그런데 면접에서 부사장이 이러는 거야. “우리는 작지만 약사들이 하는 회사입니다” 그 말이 뭔가 와닿았어요. 그래서 “한미약품을 일류 기업으로 키워보겠습니다”하고 첫 면접을 본 한미약품에 들어갔죠. 그리고 정말 한미약품이 일류 기업으로 성장할 때까지 함께했습니다. 사실 이번에 《춘천사람들》 총회준비위원회에 참여하 게 된 것은 필요하다면 저의 이러한 경험을 공유하고 싶어서였죠.

회사에서 인정받고 중요한 직책도 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만두고 춘천으로 오게 됐나요?

정말 열심히 일했어요. 회사에서 인정을 받으면서 임원으로 진급도 되고, 한중 수교 후 중국에서 사업도 맡았습니다. 그러던 중에 갑자기 간경화가 왔어요. 그래서 98년도에 사직하게 됐죠. 하루에 700km를 이동하면서 일했다고 하면 믿겠어요? 그때 샀던 스포티지를 80만km까지 탔었으니까. 그렇게 일을 하다 보니 무리가 온 거죠. 그래서 제천 외가에 가서 5년 동안 봉사를 하면서 몸을 회복시켰어요. 몸이 완전히 회복되고 2002년에 춘천으로 온 거죠. 춘천에서 마지막으로 뭔가를 해보자 하는 마음이었죠.

그렇게 귀향했군요. 《춘천사람들》은 어떻게 알게 됐나요?

도시재생공부방 모임을 통해 알게 됐어요. 도시재생에 대해서 공부를 좀 하고 싶어서 참여했는데 누가 《춘천사람들》을 가지고 왔더라고요. 솔직히 원래 ‘내가 춘천 신문 한번 만들어봐야겠다’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벌써 춘천 지역 신문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가입하게 됐죠.

도시재생에 관심이 있었군요?

도시재생이 뭔지 궁금해서 들여다보니까 문제가 보였어요. 도시재생은 낙후된 지역 주민들의 삶을 보다 윤택하게 만드는 건데 뭔가를 짓고, 그리는 하드웨어만 있는 거죠. 종합적인 판단을 하고 관리하는 소프트웨어가 없는 거예요. 그럼 그걸 누가 해요? 춘천시가 하든지, 마을 주민들이 직접 해야겠죠. 그래서 ‘근화소양 마을관리 사회적협동조합’을 만들었어요. 강원도 최초로. 그래서 목공방, 카페, 도서관 등을 만들고 관리하고 있어요. 다른 동네에서 견학을 오기도 했고요.

《춘천사람들》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요?

최근에 도청사 이전 문제가 있었죠. 이러한 주요 이슈가 등장했을 때 《춘천사람들》이 공론장을 만들어줬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춘천사람들》이 지역의 여론을 주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또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춘천사람들》이 광고라든지 사업적인 측면에서 좀 더 이익을 창출할 방법을 연구해야 할 것 같아요. 지금 광고가 너무 적어요. 광고의 필요를 느끼게 만들고 들어오게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춘천사람들》이 지금처럼 직접 찾아가기도 해야겠죠. 광고가 전체 지면의 몇 %를 차지해야 한다는 계획이 먼저 세워져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광고주를 지자체, 사업가, 개인 등으로 선별해 단가를 조정해서 목표를 구체적으로 설정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양한 의견들이 있을 겁니다. 우리가 같이 연구해 보자고요.

박종일, 홍석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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