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 창비

-빨치산이 아닌 나의 아버지-

“진보가 뭐고 보수가 뭔지 잘 모르겠다. 

다만 편하게 강자 편에 서기보다는 불편함을 감수하고도 

할 말을 하고 사는 것이 진보라고 한다면 

좀 어렸을 때부터 그런 성향이 있었다. 

자기 생각을 밝히면서 다 같이 사회에 관심을 갖자고 말하고 

돈보다 생명이 먼저라고 말하면 좌인가? 

그럼 나는 좌가 맞는 것 같다.”

 

요즘 보기 드문 자타공인 현모양처 생활 정치인이 보내준 방송인 이효리의 소신 발언이다.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한 채 턱을 괸 사진과 함께 보내온 저 말처럼 우리는 누군가에 의해 보이지 않는 선으로 나뉘어 있다. 그 선은 언제부터인가 선 건너편 사람을 낯 가리게 되고 서로가 서로를 ‘다른 사람’이 아닌‘틀린 사람’으로 몰아가고 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는 내내 떠오른 이말, 나는 좌(左)인가?

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이야기는 아버지의 죽음을 알리는 예사롭지 않은 첫 문장으로 시작된다. 전직 빨치산이었던 아버지 고상욱은 그렇게 자본주의 세상을 버리고 장례식장에서 그와 연을 맺은 사람들과 마주하게 된다. 딸 ‘아리’가 문상객들을 맞으면서 몰랐던 아버지의 삶을 하나하나 발견해 나가며 ‘빨치산 아버지’가 아닌 ‘나의 아버지’가 되어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뼛속까지 사회주의자였던 아버지와 누룽지를 어머니보다 세배나 더 크게 말아 주었던 아버지는 같은 사람이였던 것이다. 아버지는 죽음을 맞이하며 비로소 삶 속에 묶여 있던 이데올로기의 갈등으로부터 해방을 맞이하게 되고 ‘아리’로 등장한 저자 정지아는 그간의 오만과 무례, 어리석음에 대한 용서를 구하며 아련한 슬픔을 자아낸다.

고인의 장례식마저 부러워하는 이들이 있다. 여수 만성리 바닷가의 형제묘는 시신을 찾을 길 없던 유족들이 같은 날,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서 죽은 사람들끼리 이제라도 형제처럼 지내라는 의미로 세워져 있다.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 아픔, 여순사건 특별법이 제정되었다고는 하지만 그들을 위로하기엔 여전히 부족해 보인다. 국가에 의한 희생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길….

  안수정 (춘사톡톡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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