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도시사업 ‘ON-다’ 문화예술단체와 읍면 연결
읍면에 최적화된 문화예술프로그램 기획 및 실행
“문화도시사업의 혜택이 오지마을에도 와닿기를”

 오지마을 한덕리에 핀 빨간 동백꽃

기자는 지난 26일 정오가 지나 페이퍼 플라워 공방 ‘프롬제이’의 김민진·김은별 작가와 함께 남면의 오지마을 한덕리로 향했다. 가는 중에 동내면의 이름난 떡 카페 ‘오감재’에 들려 어르신들에게 드릴 떡을 찾은 후 흰 눈이 이불처럼 덮인 겨울 산 꼬부랑 국도를 50여 분 달려 도착한 곳은 새하얀 설국 한덕리 마을 회관이다. 이종순(73) 노인회장이 언 몸을 녹이라며 내준 따뜻한 커피 한 잔으로 마음까지 따뜻하게 데우며 잠시 후 시작될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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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리 어르신들과 프롬제이 작가들, 면장 등이 새해 인사를 전했다.

예정된 오후 2시가 되자 마을 어르신 15명이 조심조심 눈길을 살피며 삼삼오오 도착했다. 인사와 덕담이 오가는 웃음꽃 가득한 마을 회관은 한동안 잊고 살았던 우리네 정겨운 시골 풍경이었다. 이내 커다란 밥상에 둘러앉은 어르신들은 김민진·김은별 작가의 설명을 들으며 색종이로 동백꽃을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엔 쭈뼛쭈뼛 망설이던 할아버지의 어색한 미소는 이내 사라지고 알록달록 색종이를 가위로 오리며 어린아이처럼 연신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농사로 거칠어진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손에서 동백꽃의 빨간 꽃잎이 피어났다. 역시 할머니들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꽃잎과 꽃술을 뚝딱 만들어내더니 향기라도 나는 듯 노란 꽃술에 얼굴을 비볐다. 뜬금없이 시작된 할아버지의 노래 한 자락에 박수가 쏟아지더니 기자와 작가들에게 마을과 자식 자랑을 쏟아냈다. 어르신들은 이구동성으로 “야 이거 재밌네”, “화투보다 좋지”, “봐봐 나 잘했지” 등 솔직한 마음을 드러냈다. 

어느새 도착한 남면의 김영배 면장과 박지영 복지민원팀장, 춘천문화재단 문화도시본부 시민문화팀원도 어르신들 틈에 자리를 잡고 앉아 안부를 묻고 꽃 만들기를 거들고 나섰다. 모든 순간이 마을의 자그마한 잔치였다. 박 팀장은 “코로나로 인해 어르신 활동 지원이 모두 중단됐었는데 이런 프로그램이 생겨 다들 정말 좋아하신다. 문화도시사업의 혜택이 오지마을에도 와닿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어느덧 시간은 오후 4시, 한덕리 마을회관에 커다란 빨간 동백꽃 15송이가 활짝 폈다. 어르신들은 각자의 동백꽃을 들고 아이처럼 자랑하며 마을 회관 실내를 장식했다.

우리 마을에 문화예술이 ‘ON-다’

기자가 다녀온 프로그램은 문화도시사업 중 이제 막 시작된 ‘ON-다’의 현장이다.

‘ON-다’는 춘천의 문화예술단체 10팀과 10개의 읍면을 연결, 각 단체가 문화예술 소외지역에 최적화된 문화예술프로그램을 기획 및 실행하는 사업이다. 오지마을에 문화예술이 찾아와 문화예술의 빛을 밝힌다는 뜻을 담았다.

(사)강원민예총 춘천지부풍물굿협회와 북산면, 공공미터 협동조합과 신북읍 유포2리, 국악창작그룹 ‘자락’과 남산면, 문화프로덕션 도모와 신동면, 이상원 미술관과 사북면, 춘천사암리농악 보존회와 동내면, 프롬제이와 남면, 에스텔 앙상블과 동산면, 이영뮤직엔터테인먼트와 동면, 문화예술굼터 뽱과 서면이 매칭됐다. 

지난해 11월 높은 경쟁을 뚫고 선발된 10개 단체는 12월에 읍면 주민들, 행정복지센터 담당자 등과 소통하며 각 읍면에 필요한 문화예술프로그램이 무엇인지 파악했다. 예를 들어, 춘천시 10개 읍면의 연령대별 평균 비율은 10세 미만(4%), 학생(5%), 청년(14%), 중장년 (27%), 노년(49%)이며, 이 중 신북읍·동면·신동면·동내면은 10세 미만~중장년의 비율이 평균을 넘어서지만 노년층의 비율은 낮다. 반면, 동산면·남면·남산면·서면·사북면·북산면은 노년층의 인구비율이 평균 비율을 상회하지만 10세 미만~중장년층의 구성 비율은 낮다. 또 읍면의 면적과 거점 공간, 주민 이동 편의성 등도 읍면마다 형편이 다르다. 기자가 다녀온 남면은 이런 특성을 고려해서 어르신들이 수월하게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페이퍼 플라워 만들기’를 남면 각 마을의 마을 회관에서 진행하게 됐다. 

이외에도 △(사)강원민예총 춘천지부풍물굿협회는 전통문화인 열림굿, 터벌림굿 등을 진행하고 마을에 장승을 세우며 주민들과 함께 문화마을 공동체 형성 △공공미터 협동조합은 소쿠리·농기구 등 농가의 다양한 소재를 이용하여 우리 집만의 이야기가 담긴 태양열 전등을 주민과 함께 제작 △국악창작그룹 자락은 다양한 커리큘럼으로 진행되는 공연·식사·체험을 통해 어르신들에게 어린 시절의 추억과 감동을 선물한다. 

△문화프로덕션 도모는 신동면 주민들과 실레마을 산책, 내 인생 이야기, 프로필 촬영 등을 진행하고 주민들과 함께 김유정 관련 연극 제작 및 공연 진행 △이상원 미술관은 남녀노소 누구나 즐기는 미술(캔버스 컬러링 등), 도자(핸드페인팅), 금속(실버반지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 △춘천사암리농악 보존회는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지신밟기와 공지어(孔之魚)를 만들어 풍농을 기원하며 농악 배우기 △에스텔 앙상블은 동산면 주민들에게 피아노·바이올린·비올라·첼로 등으로 구성된 공연 제공 △이영뮤직엔터테인먼트는 동면의 스토리를 담은 창작과 세계적인 팝·연주곡·케이팝을 곁들인 다채로운 옴니버스 형태의 록·밴드 공연 △문화예술굼터 뽱은 한국과 이탈리아 인형극을 접목한 〈홍동지와 이시미〉공연과 주민들이 이시미 인형을 제작하고 구동하는 체험활동을 진행한다. 

각 단체는 1~2월 농한기에 마을의 거점 공간에서 또는 마을 순회 등 읍면의 실정에 맞는 다양한 방식으로 프로그램을 실행한다. 이어서 3월에는 결과공유회를 열 예정이다. 문화도시사업의 혜택이 춘천 도심과 일부 눈 밝은 시민의 전유물이 아니라 춘천 곳곳 구석구석 환히 밝히길 기대한다.

박종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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