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영(서양화가) 조합원

안녕하세요. 근래에 《춘천사람들》 잘 보고 있나요?

잘 보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무척 바쁘게 지내서 밀린 걸 한 번에 몰아서 봤어요. 

전시회로 바쁘셨죠?

지난해 11월에 춘천문화예술회관에서 단체전 ‘광야에서’와 서울 인사동에서 개인전 ‘그 존재의 가벼움으로’ 등을 무사히 마치고 잠시 여유를 갖고 있어요. 하지만 또 3월 10일에 춘천미술관 전관에서 열리는 ‘기해(己亥) 동행전’ 준비로 바빠질 것 같아요.

김대영(서양화가) 조합원

‘기해(己亥) 동행전’은 완전히 자리 잡았네요.

예. 지난 2020년 창립전시회를 시작으로 꾸준히 이어오고 있어요. 춘천에는 권매화·권석민·박태원·오흥택·허남욱·육동한·박진오·허인구·이면우 등 지역의 여러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59년생 기해생(己亥生) 인사들이 많습니다. 전후 베이비붐에 속에 태어나 어렵게 성장했지만, 현재보다는 더 따뜻하고 정겨웠던 시절을 보내며 괜찮은 세상을 꿈꾸던 예술가와 언론, 공직의 기해생 친구들이 새해가 시작되면 한 해의 안녕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은 그림과 서예, 사진 등 각자의 작품을 선보입니다

밤늦은 퇴근길에 지하상가를 지날 때, 작업실에서 묵묵히 그림을 그리는 작가님을 종종 발견합니다. 그림 그리는 게 그리 좋으세요? 어떤 매력이 그림으로 이끌었나요? 

정말 꼬맹이 때부터 만화를 참 좋아했어요. 정말 멋진 캐릭터들을 만나면 공책 한 귀퉁이에 그대로 따라 그렸습니다. 그걸 보고 친구들이 자기도 그려 달라고 주문도 폭주했다니까요. 종이가 귀하던 시절이어서 아버지한테 호되게 혼나면서도 그렇게 좋더라고요. 그래도 공부도 꽤 잘해서 초등 3학년 때 우등상을 탄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떠보니 머리맡에 왕자표 크레파스, 그것도 제일 비싼 삼단 크레파스가 놓여 있더라고요. 아버지의 선물이었어요. 특별활동으로 미술을 했는데 사생대회가 열리면 꼭 발탁됐어요. 가뜩이나 교대 출신의 예쁜 미술 선생님이 유독 저를 이뻐해 주시니 더 신나서 그림을 그렸어요.

그런데 춘천고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점심시간에 3학년 선배가 갑자기 들어와서는 미술부원을 모집했어요. 그 선배가 바로 고 박희선 조각가였어요. 서울대 미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국전, 중앙미술대전, 대한민국미술대전, 김종영 조각상, 가톨릭 미술상 등을 수상했어요. 분단과 통일, 한국의 전통과 민중항쟁의 역사를 주제로 많은 작품을 남기고 마흔, 짧은 생애를 살고 떠났죠.

그렇게 미술부에 들어갔어요. 그런데 사실 그때까지는 미대에 진학할 생각은 없었어요. 그저 공부하면서 여유 있을 때 취미로 그림을 그리고 싶었어요. 근데 뭐 그렇게 그림 그리기 연습을 많이 시키는지 학업 공부할 틈이 없을 지경이었어요. 성적은 떨어지고 더는 안 되겠다 싶더라고요. 알고 보니 미술부는 미대 진학을 목표로 하는 거였더라고요. 하하. 미술부에서 저와 1학년 몇 녀석만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에요. 하하. 그래서 공부하겠다는 놈들은 선배들한테 엉덩이 빠따를 맞고서야 미술부를 나갔고, 나는 까짓거 미대에 가자고 결심했어요. 하하. 아버지요? 뻔하죠. 어릴 때 삼단 크레파스 사주신 아버지가 아니었어요. 하하. 된통 야단맞고 쫓겨나서 미술실의 골방에서 동생이 싸다 주는 도시락 먹으며 지냈어요. 하하. 한 일주일 지나 아버지가 부르셔서 갔더니 “그래 네가 하고 싶으면 그려라. 근데 최고가 되어야 한다”라고 허락하셨어요. 돌이켜보면 그냥 자연스럽게 ‘환쟁이’가 될 운명이었던 것 같습니다.

유독 좋아했던 만화가나 만화책이 뭔가요? 

이근철·김종래·방학기·고우영 등과 그분들의 작품을 정말 좋아했어요. 특히 2001년 작고한 고 김종래 작가의 〈도망자〉 시리즈는 압권이었어요. 1969년 발행됐는데 조선을 배경으로 억울한 살인 누명을 쓰고 쫓기는 한 의원을 통해 민초들의 애환과 당시 사회의 모순을 담았어요. 아버지도 좋아하셨죠. 그런 만화들이 자양분이 됐어요. 

예전 작품과 현재의 작품 속 대상이 다른데 춘천이 어떤 영향을 준 건가요?

수도권에서 살다가 문득, 고향이야말로 편안하게 제대로 작업을 할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죽을 때까지 춘천을 그림에 담고 지역 미술 발전에 힘을 보태자는 생각으로 2013년에 돌아왔죠. 

그전에도 점묘 기법과 오방색 라인으로 우리 산하를 표현했으니, 점을 찍어서 그리는 표현 방식은 예나 지금이나 같아요. 하지만 그리는 대상이 바뀐 건, 어릴 때 뛰어놀던 야트막한 동산에서 받은 영감과 에너지가 자연스레 드러나게 된 것 같아요. 특히 어머니께서 편찮으실 무렵 어느 해 이른 봄 봉의산에 아침 운동을 다녀오는데 넝쿨 더미에서 개나리 꽃망울이 올라오는 걸 보고는 생명의 에너지를 강하게 느꼈어요. 한국의 들과 산에 지천으로 널려 있고, 주목받지 못하는 메마른 넝쿨이 생명을 잉태하며 자연의 순환에 큰 역할을 하는구나, 어머니의 품과 다르지 않다고 깨달았죠. 그래서 그때부터 지금 주제에 천착하기 시작했어요. 

지금까지 해온 작업에서 더 나아가고 싶은 방향이 있나요?

글쎄요. 이 나이에 새로운 주제를 찾으려고 하기보다는 현재 천착하는 ‘자연의 순환’, ‘공생’, ‘인연’이라는 주제를 계속 이어가면서 조형적인 구성과 색, 재료 등의 씀씀이 등을 더 많이 연구하려고 해요. 예를 들어서, 넝쿨과 산당화, 개나리를 같이 그렸던 걸 산당화와 개나리를 전면에 크게 뽑아내고 배경에 넝쿨을 구성하는 식으로 주제에 더 잘 접근하고 전달하는 표현 방법을 찾고 있어요.

이사장을 맡고 있는 사회적협동조합 ‘예술공감’은 어떤 취지인가요?

조합원인 춘천 예술인들의 복리를 증진하고, 문화예술품 임대·판매를 통한 작품 활동 지원, 전시·교육 등 예술의 사회적 가치 확장을 위해 지난 2020년 설립했습니다. 춘천에는 아직 작품을 판매·구매하는 시장이 너무 작아요. 그래서 우선 지역의 주요 공공기관, 학교 등에 작품을 임대하여 로비 등에 작품을 전시하는 방식을 도입했어요. 작가들이 지속적으로 작업을 할 수 있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자는 거죠. 

지난해는 춘천시 공공미술 임대 사업에 선정되어 시청 로비에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 때문에 각 기관의 예산이 깎여서 쉽지 않네요. 올해는 춘천의 주요 기업체에 좀 강하게 어필하려고 합니다.

김대영(서양화가) 조합원

조합원은 어떤 계기로 가입했나요? 

예전에 중도 뱃터에서 예술인들이 프리마켓을 열었을 때 《춘천사람들》 조합원들이 나와서 홍보를 하더라고요. 그들 중 이미 잘 알고 지내던 우은희 이사 등 지역에서 다양하게 활동하면서 나와 잘 맞는 분들이 이미 조합원으로 다 참여하고 있었어요. 그들이 들려준 취지에 공감해서 주저하지 않고 함께했습니다.

《춘천사람들》에 바라는 점이 있을 테죠?

아무래도 예술 분야에 몸을 담고 있으니까. 조금 더 세밀하게 문화와 예술을 다뤘으면 좋겠어요. 가령 한 화가의 전시회를 소개하고 나서도 반년이나 1년 지난 다음에 그가 어떻게 변해 있을까? 화풍과 삶의 궤적을 소개해 줄 필요 있을 거 같아요. 그래서 독자들이 아, 이 사람이 이렇게 성장하고 있구나 하는 것도 알려주면 좋겠죠.

또 《춘천사람들》에서 춘천시립미술관 건립 필요성에 관한 기사가 여러 차례 실린 줄 알고 있어요. 그간 민간 주도로 활동해왔던 춘천시립미술관 건립추진위원회가 제대로 활동하기 위한 조례가 최근에 제정됐고, 시에서는 상중도를 건립부지로 생각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하지만 더 많은 시민들에게 춘천시립미술관의 필요성이 알려졌으면 좋겠어요. 단순히 갤러리가 아니라는 점, 춘천 미술의 과거를 모으고 정리하고 현재를 소개하며 미래를 이끌어갈 제대로 된 미술관 하나 없는 현실 말입니다. 강릉은 그나마 형식을 갖춘 강릉시립미술관이 있고, 원주시도 현재 시립미술관 건립이 추진되고 있어요. 이런 걸 기획기사로서 좀 더 비중 있게 상세히 다루고, 춘천시립미술관이 제대로 건립되도록 감시하며 힘을 보태주길 바랍니다.

또 지난해 가을에 했던 자그마한 전시회, 먹거리 장터 이런 거 말고, 조합원·독자·시민들이 함께 제대로 어우러질 수 있는 자리가 1년에 한 번이라도 제대로 열렸으면 좋겠어요. 조합원 중에는 지역의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들의 전문분야가 융·복합되거나 또는 각 전문분야의 이슈를 드러내는 프로그램을 마련해서 참가비도 받고 제대로 하는 거예요. 조합원은 조합에 참여하는 의미와 보람을 얻을 수 있겠죠.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조합원들을 한자리에 모아서 토론회도 열고 그러면 좋겠어요.

뭔가 통했네요. 마침 저희가 그런 기획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조합원들에게 아직 공개하지 않고 있는데 조만간 자리를 마련할 겁니다. 시립미술관 외에 춘천의 예술계 혹은 예술 정책에 대해서 아쉬운 점이 또 있을까요? 

동네마다 작은 예술공간이 더 늘었으면 좋겠어요. 노인들도 “거기 가면 뭐 재밌는 게 있다더라 한번 가 보자”라며 쉽고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곳 말입니다. 물론 춘천문화재단에서 문화도시사업으로 빈집을 활용하여 뭔가 애쓰는 것 같은데 약사천 옆의 자그마한 한옥 전시공간 ‘터무니창작소’도 조만간 본래 집주인과 계약 기간이 끝난다고 하더라고요. 시가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신축 빌딩에 그런 공간을 마련하게 하는 등 아이디어를 냈으면 좋겠어요. 《춘천사람들》에 여유가 생기면 그런 자그마한 문화예술공간도 갖췄으면 좋겠는데 어렵겠죠? 하하

지하상가 예술인 창작공간에 들어온 이유도 그런 취지이죠?

조운동 도시재생활성화계획으로 2001년 5월에 들어왔어요. 교동에 작업실이 있긴 하지만 여기서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지하상가를 오가는 시민들이 벽에 걸린 그림을 보며 기웃거려요. 그럼 들어오시라 청합니다. 그렇게 시민들과 그림을 주제로 대화를 나눠요. 그중 일부 시민은 그림을 배우러 오기도 합니다. 또 이곳에 입주한 화가들은 도시재생 관련 행사에도 참여해 힘을 보탭니다. 예술가가 지역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게 그런 거 아닐까요? 

앞으로 계획은 뭔가요?

앞서 언급한 ‘기해(己亥) 동행전’이 예정되어 있고, 8월에는 정선 화암면의 ‘그림바위예술발전소’에서 한 달 동안 초대전이 열립니다. 예술발전소는 과거에 발전소에서 오는 전기를 적당한 전압으로 바꾸어 마을에 전송하는 변전소였었는데 예술공간으로 변신했죠. 《춘천사람들》도 그런 역할을 하면 좋겠어요. 춘천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문화와 예술을 지역에 잘 전파해주는 사랑방 역할 말입니다.

박종일 홍석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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