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나리미술관 기획전 ‘사각사각’ ~2.12.
20대 예술가들이 전하는 ‘죽음’에 관한 사유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죽음’은 늘 우리 곁 가까이에 도사리고 있다가 예고 없이 검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세계를 할퀸 전염병이 수많은 생명을 앗아갔고 얼마 전에는 엉성한 국가 시스템이 이 땅의 아까운 청춘들을 떠나게 했다. 또 머나먼 이국땅에서는 지도자의 탐욕이 일으킨 전쟁이 이 순간에도 생명을 앗아가고 있다. 이 때문에 개나리미술관(관장 정현경 조합원)이 ‘죽음’에 대한 깊은 사유를 담은 특별한 전시회 ‘사각사각’을 마련한 건 시의적절하다. 20대 청년작가 그룹 ‘808’의 기획전 ‘사각사각’은 최근 춘천으로 이주한 한동국 작가를 주축으로 곽현규·구구·권원석·최성우·한태호 등 중앙대 미술학과 출신 여섯 작가가 참여한다. 

파릇파릇한 청년작가들에게는 ‘죽음’보다는 ‘희망’이 더 잘 어울린다. 하지만 작가들은 또래 청년들이 차가운 골목길에서 쓰러져 간 아픈 일을 겪으며 전쟁·전염병·경제난·기후위기·테러 등 혼돈과 불안으로 점철된 현대인의 삶 주변에 늘 도사리고 일상의 모든 곳에서 언제든지 맞닥뜨릴 수 있는 죽음을 정면으로 마주하기로 했다. “삶에서 마지막 순간이 온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죽음을 맞이하면 누구에게 어떤 메시지를 남길 것인가?” 등 ‘죽음’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유서’도 쓰며 전시회를 기획했다. 20대 젊은 예술가다운 시도이다.

전시회 타이틀 ‘사각사각’은 유서를 써 내려가는 상황에서 들릴 법한 의성어이자, 죽음에 대한 사유를 담은 사각의 회화 프레임을 의미한다. 곽현규 작가는 매일의 시간을 기록하며 지나온 삶의 찰나들을 떠올린다. 기억 속에 차곡차곡 새겨진 삶의 이미지들이 캔버스 위에 새겨졌다. 그 찰나들의 틈에서 죽음을 떠올린다. 작가 구구(GuGu)는 독창적인 캐릭터를 통해 다양한 심리를 디지털아트 및 캔버스에 묘사해 왔다. 이번에는 ‘자살’을 소재로 삼아 ‘살자’와 맞닿아 있는 죽음의 이중적 표정을 지닌 캐릭터 ‘Die hard’를 선보인다. 

권원석 작가는 사회의 주역이 되어야 할 청년들이 노력해도 보상받지 못하는 시대 속에서 패배자가 되어 체념하는 현실과 죽음을 연결한다. 체념은 죽음보다 무서운 걸까? 그가 그린 죽음의 이미지는 자조적이며 우스꽝스럽다. 최성우 작가는 나무판에 글과 그림을 섞어 죽음을 이야기한다. 하고픈 이야기가 많은 듯 목탄으로 쓴 유서는 쓰고, 쓰고, 쓰다 보니 내용을 알 수 없게 새카맣게 됐다.

한동국 작가는 사적인 기억을 토대로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를 ‘현관문’으로 표현해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유서의 내용을 줄거리로 하는 9컷의 만화를 선보인다. 2000년대에 태어나 이들 중 가장 어린 한태호 작가는 가장 직접적으로 죽음을 파고든다. 관람객은 혐오와 공포 속에 극단적인 괴물의 형태로 표현된 ‘죽음’의 형상을 마주하게 된다. 

전시는 유화·아크릴화·목탄·펜화·콜라주 등 총 50여 점의 평면작품들로 구성되며, 관람객 참여하는 코너도 운영된다. 홀로 작은 공간에서 유서를 쓰며 죽음에 대해 사유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전시회는 죽음에 대한 사유뿐만 아니라 사회에 던져진 청년들의 고민과 정서를 엿보게 한다는 점에서 세대 공감과 소통의 가능성도 제시한다. 

한동국 작가는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시대에 살고 있어요. 저는 후회 없는 삶을 살았어요. 그러니 장례식은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저를 추억하는 파티가 되었으면 해요. 제게 재산이 있다면 남김없이 기부하겠습니다. 연명치료는 거부하겠습니다. 이 유서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다 맞이하는 죽음 이후에 읽힌다면 더할 나위 없어요.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전 이 세상의 모든 굴레와 속박을 벗어던지고 제 행복을 찾아 떠납니다. 여러분도 행복하세요”라며 초대한다.

박종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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