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성 (전 정의당 강원도당 부위원장)

대학을 졸업하고 노동조합에서 일하기 시작했을 때, 직장도 집도 서울에 있었다. 서울에서는 전셋집을 얻을 보증금이 없어 월셋집에 살았다. 결혼을 하고 신혼부부 대출을 받아 경기도의 작은 전셋집으로 이사를 하였고, 그해 아이를 낳았다. 월세가 2%의 낮은 이자로 바뀌어 한결 돈 걱정이 줄었지만, 돌 즈음 시작된 아이의 아토피는 나을 기미가 안 보였고, 만원 버스 사이에 끼여서 매일 왕복 두세 시간씩 서울로 출퇴근하는 것도 곤욕이었다. 돈을 덜 벌더라도 건강을 회복하고 삶의 여유를 찾고자 제주로 이주했다. 

제주공항에 내렸을 때 복잡하고 번화한 도심에 많이 놀랐다.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때가 제주 이주 유행의 끝자락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2006년 제주도가 특별자치도로 바뀐 후, 제주도는 경제발전을 명목으로 환경규제를 대폭 풀면서 외부 자본을 유입시켰다. 인구도 도로도 늘었지만, 숲과 마을 공동목장이 밀리고 대형 리조트, 골프장이 우후죽순 들어섰다. 관광객 수는 증가했지만, 관광의 질과 패턴은 많이 달라졌다. 대자본이 들어오면서 대형 프랜차이즈 식당과 카페, 골프장과 리조트를 이용하는 관광객의 비중이 늘었다. 지역의 골목상권이 휘청거렸다. 제주의 중소 영세 자영업자들은 대자본과의 경쟁에서 밀려 줄폐업을 했고, 치솟은 집값과 물가에 제주의 청년들은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제주의 자연을 아꼈던 관광객들도 망가진 제주 대신 난개발이 되지 않은 해외 관광지로 발걸음을 옮겼다고도 한다. 

최근 강원도는 강원특별자치도 출범 준비로 무척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제주특별자치도를 강원특별자치도의 모델로 삼고 부작용보다는 성장사례를 주목해 보여주면서 우리도 제주처럼 하면 잘 살 수 있다고 홍보하고 있다. 강원특별자치도의 비전을 ‘미래성장 글로벌도시’로 정하고 각종 특례가 들어간 2차 개정법률안을 확정하여 입법 준비에 들어갔다. 

산림, 환경, 군사, 농업을 4대 핵심 규제 분야로 선정하고 정부 부처의 일부 권한을 도지사에게 이양하여 규제지역 해제 및 특례 적용으로 정부의 개입 없이 신속하게 개발하겠다는 것이 개정안의 주요한 내용이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환경부와 산림청의 핵심 권한이 도지사에게 대폭 이양된다. 도지사가 마음만 먹으면 환경영향평가를 무력화시키고 1등급 보호구역을 개발할 수 있다. 심지어는 상수원 보호구역의 상류 지역, 취수시설 지역에 과학기술단지 폐수시설을 설치할 수도 있다. 강원도민들은 제주보다 더 심각한 난개발의 상황을 만날 수도 있다. 

또 개정안은 민주주의 실현과 도민자치권 보장에도 문제가 있다. 도지사의 권한은 막강해지지만, 이 권한을 감시하고 견제할 만한 장치는 거의 없다. 특별자치도인데 도지사만 특별해지고 도민의 자치권은 상대적으로 줄어들게 된다. 제왕적 도지사가 군림하는 탓에 반대의 목소리는 전보다 더 억압당할 위험이 커진다.

녹색 없는 강원특별자치도, 강원난개발자치도를 우려한다. 강원도는 급히 서두르려 하지 말고 다양한 관점을 수용하면서 충분히 숙고하여 강원도의 생태환경을 지켜가는 방향으로 개정안을 마련해야 한다. 황폐해진 산림, 오염된 강과 바다만 남은 강원특별자치도에서 도민들은 과연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이효성 (정의당 강원도당 사무차장)

 

저작권자 © 《춘천사람들》 - 춘천시민의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