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근(시인)

문재인은 노무현이 죽는 것을 보았고

나경원은 조국이 피 흘리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국민은

박근혜가 끌려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사람은 겁을 먹어도

국민은 겁먹지 않는다

정치인은 겁을 먹어도

정의는 겁먹지 않는다.

역사는 겁먹지 않는다.


오늘 검찰청 앞에 선 이재명 대표 모습을 보자니 자꾸 저 어른들 생각이 난다. 유신과 신군부와 온갖 폭력의 냄새가 한 데 짓뭉개진 독재의 악취. 

절망 쪽으로 자꾸만 발목이 휘어지지만, 그래도 이렇게 당하고 말 수야 없지. 나라 망하는 꼴 지켜만 볼 수야 없지. 나쁜 놈들이 다 해처먹는 나라 내버려 둘 수야 없지. 짓밟혀 죽을 수야 없지.

죽어도 살아야 한다. 살아서 싸워야 한다. 내 자식과 자식의 후손들이 살아야 할 나라, 이런 무도한 지옥을 물려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오고(김영삼),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고(김대중), 정의가 무너진 사회에서는 어떠한 번영도 있을 수 없다(노무현).

지금 악마들과 싸우는 데 가장 큰 적은 우리 양심 안에 발호하고 있는 비겁과 기회주의다. 민주당 안에 너무 많다. 국민이 누굴 믿고 살겠는가. 

하긴, 국민은 국민끼리 믿고 사는 거지. 저 어른들이 흘린 피와 눈물, 그리고 마침내 죽음의 무게가 더 아프고 슬프게 다가오는 시절이로다. 아아, 시바!


2011년 오늘, 경기도 안양의 한 월세방에서 시나리오 작가 겸 영화감독 최고은 씨가 숨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30대 초반의 전도 유망한 영화인이었던 그는 갑상선 기능 항진증과 췌장염을 앓고 있었습니다. 영화 관련 명문대를 나와서 활발히 활동하였으나 몇달째 월세가 밀려있었고 전기마저 끊긴 형편이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숨지기 전에 그는 다가구주택의 이웃집 문에 이런 쪽지를 붙여두었습니다. “그동안 너무 도움 많이 주셔서 감사합니다. 창피하지만 며칠째 아무것도 못 먹어서 남는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들겨 주세요”

그의 사인을 두고 아사냐 병사냐 논란이 많았습니다. 다 허망한 소리였습니다. 병으로 죽든 굶어서 죽든 우리 사회는 응달에 서 있는 사람들을 보살피지 않는다는 사실을 뚜렷이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타인과 타인만 존재하는 비정한 사회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비로소 화들짝 놀랐지만, 돌아보니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었던가요?

이명박 정부의 범죄를 새삼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나라를 개인 치부의 수단으로 삼았던 그 더러운 영혼을 그의 소망교회 하나님께선 여전히 기뻐하며 품어주고 계실까요?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는 돈들을 마구 빼돌리고 있는 동안 나라는 거덜나고 개인은 죽어갔습니다. 

그 앞잡이들이 지금 다시 등장해서 윤석열 정권의 경제 정책을 좌지우지하고 있습니다. 호시탐탐 공공재의 민영화(사유화)를 꾀하면서 부자들은 살리고 서민들은 죽이는 정책 실현에 골몰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벌어질 일들은 더 캄캄합니다. 가계 수입만 빼곤 모든 분야에서 오르지 않을 것이 없습니다. 심지어 전기 요금은 1.5배 인상이 예상되고 있습니다. “못 배우고, 가난하고, 늙은” 사람들이 지지한 정권이 그들을 더 노골적으로 짓밟고 있습니다. 이게 우리나라 보수 참칭 이익 추구 세력의 실체입니다. 

알맹이는 다 빼돌리면서 모든 책임을 문재인 정권 탓으로만 돌리면 그만입니다. 그들이 믿는 “개돼지들”은 또 속습니다. 속고 속고 또 속습니다. 

며칠째 맹추위가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무도한 정권은 우리 이웃의 힘 없고 가난하고 병든 이들을 여지 없이 죽음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우리끼리라도! 부디 우리끼리라도 이웃의 응달을 살피도록 합시다. 가난 때문에 굶어죽고 얼어죽고 병들어 죽는 이들이 생겨나지 않도록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줍시다. 거룩한 주일에... 진지해서 죄송합니다. 

오늘은 한 꿈 많았던 예술가의 기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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