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돈호 조합원(제일카메라 대표)

조합원님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어서 오세요. 커피 한 잔씩 드실래요?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춘천사람들》 잘 보시는지요?

그럼요. 잘 보고 있지요. 어제도 와서 전부 읽었어요.

제일카메라는 겉으로 보기에도 역사와 전통이 느껴집니다. 얼마 동안 운영하셨나요?

춘천에서는 1988년부터 했습니다. 제일시장에서 88년 3월 25일에 오픈했고, 그전에 속초에서 조금 했어요. 당시에 제가 한국통신에서 일하고 있었어요. 지금으로 말하면 KT죠. 71년도에 들어갔어요. 당시에는 체신부 소속이었는데 나중에 분리가 됐지요. 그래서 속초에 있다가 82년에 춘천으로 왔어요.

한국통신을 다니시면서 두 가지 일은 하신 건가요?

맞아요. 뭔가 다른 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처음에는 부업으로 악기장사를 하려고 했었어요. 그런데 우리 딸 피아노를 사서 옮겨주다 보니까 너무 무겁단 말이야? 그래서 카메라 쪽으로 바꿨어요. 또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 광학산업이 아주 미미했어요. 앞으로 광학산업이 개척되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사업을 하려면 밥을 봐야 하거든요. 밥이 없으면 안 돼요. 시청 정책과에 가서 춘천 인구를 먼저 조사했어요. 당시에 인구가 22만 명 정도였고 여자가 한 7천 명 정도 더 많더라고요. 정책과에서 왜 인구조사를 보냐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사업을 좀 하려고 그런다고 했더니, 사업하면서 인구조사 보는 사람은 처음이라고 하더라고요. 밥이 중요해요.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지금은 인터넷으로 많이 하지만, 속이고 파는 사람도 더러 있어요. 그건 아니죠. 밥이 되려면 이득을 더 많이 남기려고 하면 안 돼요. 손님이 잘 알죠. 손님에게는 이건 이렇다, 저거 저렇다 설명만 해 주면 돼요. 선택은 손님이 할 수 있게 해야죠.

그때부터 춘천에 사시는 건가요?

춘천에 살다가 11년 전에 남양주로 이사갔어요. 집사람이 좀 아파서 교감선생으로 있는 큰딸이 사는 남양주로 옮겼죠.

그럼 남양주에서 출퇴근 하시는 건가요? 실례지만 연세를 여쭤봐도 될까요?

82살이에요. 출퇴근은 전철로 딱 1시간이 걸려요. 춘천역까지는 걸어가서 전철을 타죠. 춘천에 있을 때도 원래 그 정도 거리는 걸어 다녔어요.

대단하십니다. 원래 카메라에 대한 취미가 있으셨나 봐요?

처음 카메라를 갖게된 것은 1973년도에요. 당시에는 우리나라에 카메라가 거의 없었어요. 동생이 원양어선을 탔는데 일본에서 카메라를 하나 사다 줬단 말이에요. 그때부터 카메라를 만지기 시작했죠. 

그때 첫 카메라가 뭐였나요?

미놀타. 삼성으로 넘어갔다가 이제 소니로 갔죠. 80년대 초에는 우리나라에 카메라 사업이 우후죽순처럼 늘었어요. 대우니, 금성이니 다들 했죠. 그런데 잘 안 됐어요. 왜 안 되냐? 부품 공장이 없었거든요. 카메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1만5천 개의 부품 공장에 따라가야 되는 거예요. 우리나라는 일본에서 사와서 브랜드만 붙이는 식이었지요.

취미로 카메라를 접하셨는데 어떻게 매장까지 여시게 된 거죠? 

한국통신에서 보안 업무를 했어요. 24시간 근무하고 24시간은 휴식이에요. 그래서 부업을 시작하게 된 거예요. 회사에 나가 있는 동안은 집사람이 가게를 보는 식으로요. 집사람이 또 상업에 조금 밝아요.

당시에 춘천에 카메라 전문점이 몇 군데나 있었나요? 

사진관에서 카메라를 팔기는 했지만 카메라 전문점은 없었어요. 여기가 최초죠.

언제부터 전업으로 하신 거죠?

1999년 12월에 퇴직했어요. 원래 정년은 2000년까지인데 1년 먼저 퇴직했어요. 2000년을 앞두고 한국통신이 직원을 줄였거든요. 우리가 정년을 채우면 대신 젊은 직원들이 회사를 관둬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동기 6명이 “우리 나가자. 젊은 애들 봐주자. 우리 1년 더 있어서 뭐 할 거야?”하고 퇴직을 했어요.

제일 잘 팔렸던 카메라는 뭔가요? 

최고 장수 브랜드가 니콘 FM2에요. 20년 이상을 생산했고 30년 가까이 팔린 카메라죠. 니콘이 잘 나간 이유가 있어요. 한국전쟁 때 압록강 전투를 촬영하는데 얼지 않은 카메라는 니콘이 유일했어요. 그래서 니콘이 유명해졌죠. 하지만 저는 라이카를 가장 좋아합니다.

카메라는 한번 사면 평생 함께합니다. 예전에 카메라 광고가 있었죠.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 그 말을 들으면 이런 생각이 나요. 카메라는 한번 선택하면 평생 가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어떤 데 빠지면 안 돼요. 무엇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하면 안 돼요. 저는 우리 애들이나 친한 사람들한테 하는 말입니다만 마음을 활짝 열어놓으라고 얘기해요. 대문을 활짝 열어놓으라는 거예요. 들어올 사람은 들어오고, 나갈 사람은 나가고… 거절을 하지 말라는 말이에요. 남 얘기를 잘 들어주는 게 그래서 중요해요. 누가 찾아와서 하소연을 해요. 뭐가 안되서 온 거란 말이에요. 얘기를 들어주면 안 되던 일이 되겠어요? 안 되죠. 하지만 ‘그건 나한테 말해도 안 돼’라고 하는 건 마음에 장벽을 치는 거잖아요. 거절하지 말고 그냥 들어주는 거예요.

그런 말씀을 들으니 가슴이 뭉클하네요. 혹시 개인 카메라는 어떤 브랜드인가요?

개인 카메라가 없어요. ‘대장장이 집안에 식칼 놀린다’고 그러잖아요. 하하. 아무리 좋은 카메라를 내가 가지고 있어도 손님이 달라면 줘야죠. 내가 뭘 모아 놓는다, 이건 수집꾼이지 장사꾼이 아니거든요.

놀라운 이야기네요. 혹시 사진을 잘 찍기 위한 비결이 있나요?

사진을 찍는 것에 전문가는 아니지만 얘기하자면 장비도 중요하지만 자연을 알아야 해요. 자연을 모르면은 안 됩니다. 예를 들어, 꽃을 찍으려면 꽃이 피는 시기를 알아야겠죠. 눈 속에서 피는 복수초라고 있죠. 그건 그때밖에 없잖아요. 그러면 꽃이 언제 올라와서, 언제 몽우리가 생기고, 언제 꽃피우고, 언제 진다는 걸 알아야 좋은 작품이 나오잖아요. 그래야 몽우리를 찍을 것인가, 꽃을 찍을 것인가, 활짝 핀 꽃을 찍을 것인가, 시들어지는 꽃을 찍을 것인가를 정할 수 있겠죠. 사람도 마찬가지예요. 노인을 찍으려는데 무작정 카메라부터 들이되면 경직된 사진이 나오지 않겠어요? 그러니 노인을 찍기 위해서는 먼저 이야기를 나누고 친밀해져야 좋은 한 컷을 얻을 수 있죠. 

요즘에 핸드폰에 카메라가 성능이 좋아졌잖아요. 이런 전문점에서도 변화를 느끼시나요?

이제 소형카메라는 안 나가죠. 하지만 고급 카메라는 영향이 없어요. 휴대폰 카메라가 2억 화소 나왔죠? 왜 그럴까요? 조그만 칩에 많이 넣어야 해서 그렇죠. 2억 화소라고 해도 확대를 하면 깨진단 말이에요. 카메라는 비싸고 클수록 화소 수가 적어요. 작은 카메라는 한계가 있지요.

카메라 전문점도 성수기와 비수가가 있나요?

있지요. 농한기에는 카메라도 안 됩니다. 또 입학식 졸업식 명절 등 큰돈이 나갈 때도 잘안 되죠. 먹거리는 좀 예외겠지만 모든 장사는 다 6개월이에요. 카메라도 마찬가지고요.

조합원 가입은 어떤 계기로 하시게 됐나요? 

이철훈 시민기자가 단골손님이거든요. 큰 손님이에요. 오래전에 인연을 맺었었고 ‘춘천사람들’이 생기고 얼마 있다가 가입했어요.

혹시 ‘춘천사람들’에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

신문이라고 하면, 광고 수입이 있어야 하지 않아요? 신문이 되려면 광고 수입이 있어야 해요. 신문 보면서 항상 생각하는 건데, 조합원이 470명이 넘게 있잖아요. 이 중에는 영업하는 사람도 있을거 아니에요? 그러면 조합원들이 부담 크게 안 가게 상의를 해서 광고를 넣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그거 해주면서 조합원들이 조금 더 끌리게끔 해줘야 한단 말이에요. 조합원들 하는 광고는 일반 광고보다 저렴하게 큰 부담이 없이. 신문이 광고 없이 뭘 가지고 운영해요. 요새에 달려진 것 중에 마음이 드는 게 있더라고요. 춘천의 아파트 매매 가격, 그건 마음에 들어요. 부동산 다니면서 굳이 안 찾아봐도 되잖아요. 그게 생활정보란 말이에요.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은?

춘천이 관광도시라고 하는데 별로 볼 게 없어요. 개인적으로 춘천이 꽃의 도시가 됐으면 좋겠어요. 3계절 꽃이 피면 돈 많이 안 들이고 구경거리를 만들 수 있어요. 다른 지역에는 그렇게 많이 해놨어요. 고성에 가니 백일홍을 곳곳에 심어놨는데 그렇게 예쁠 수가 없어요. 저는 춘천시가 꽃의 도시, 공원 도시로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박종일 홍석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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