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방이 춘천시민들에게 유토피아 같은 곳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바라타리아’라 지었어요. 

이곳에선 손님들은 ‘산초’이고, 저는 산초가 데리고 다니던 당나귀 ‘재빛’이라 불러요. 

2000년대 초까지 춘천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들이라면, 중앙로에 있던 <청구서적>과 <학문사> 등의 서점들을 기억할 것이다. 책이 지식을 얻는 유일한 창구였던 시절, 서점은 문화의 거점이었고, 시민들의 대표적인 약속 장소였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종이 기반의 지식 향유 문화는 점차 힘을 잃었고, 우리는 청구서적도, 학문사도 그렇게 떠나보냈다. 2017년 문을 연 <데미안>은 서점 경기가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인문학 중점서점으로서 시민들의 사랑을 받았으나, 지역에서 서점으로 살아남기는 역부족이었다. <데미안>은 2021년 많은 이들의 아쉬움 속에 문을 닫았다. 최근 들어 춘천에 소규모 독립서점들이 생기고, 일부는 사라지기도 했다. <바라타리아>는 서점 생태계가 여전히 불안전하고 어려운 이 때에 과감히 문을 연 동네서점이다. 이번 호에서는 서점<바라타리아> 주인장 강은영씨와 장남운씨 부부의 무모하지만 아름다운 도전을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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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이름 <바라타리아>라는 어떻게 짓게 되었나

“‘바리타리아’는 소설 <돈키호테>에 나오는 산초가 잠깐 다스렸던 섬이에요. 실상은 산초와 돈키호테를 골려주기 위해 마을 사람들이 짜고 ‘영주놀이’에 응해준 것인데, 생각보다 산초가 마을 사람들의 여러 민원이나 문제들을 현명하게 판단해주고, 좋은 법들도 만들어 잘 다스렸고 산초 덕에 유토피아 같은 곳이 되었어요. 이 책방이 춘천시민들에게 유토피아 같은 곳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바라타리아’라 지었어요. 이곳에선 손님들은 ‘산초’이고, 저는 산초가 데리고 다니던 당나귀 ‘재빛’이라 불러요.” 

인생 시즌 2, 자유와 맞바꾼 불안한 미래

“퇴직하기 10년 전부터 전국의 여러 서점들을 찾아다녔어요. 거의 200여 군데를 다닌 거 같아요. 둘 다 책을 좋아하고, 퇴직하면 서점을 하자 했죠. 자유를 희생한 대가로 급여를 얻는 거잖아요. 아내가 먼저 퇴직하고 서점을 시작하기로 했는데, 생각보다 규모도 커지고 건물 올라가는 것을 보니까 아내 혼자서는 어렵기도 하고 저도 이곳에 마음이 너무 끌려서 생각보다 훨씬 일찍 그만두고 함께 시작했어요. 그런데 오픈하고 나니, 아예 손님이 없는 날도 있고, 4대 보험도 직장가입자에서 지역가입자로 되는 순간 부담이 커지더라구요. 자유와 함께 불안도 얻게 되었죠. 그래도 초심 잃지 않으면서 인스타로 꾸준히 홍보했고 이제 춘천뿐 아니라 전국에서도 찾아와주는 분들이 계세요.” 

서가에는 흥미로운 코너들이 많다. 춘천 작가 책을 소개하는 서가, 책에 대한 작은 단서만 주고 종이 포장지로 꼭꼭 싸매놓아 책 제목을 모르고 사는 <깜짝책>, 미래에 보내는 미리 계산한 책 <미미책> 등이다. <깜짝책>은 책을 들여다보기 전에 제목만 보고 검색하고는 타인의 평가와 편견의 눈으로 판단하는 사태가 안타까워 기획하였다. 청소년 세대가 ‘문제집’ 말고도 읽어야 할 좋은 책들을 선물하고 싶어서 마련한 것이 <미미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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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책>의 특별한 인연과 사연

“<미미책> 기증자 중에서 99호와 100호를 같이 마련해주신 분이 기억에 남아요. 당시 암 투병 중인 친구 병문안으로 춘천에 왔다가 힘든 마음을 위로받고 싶어서 책방을 찾아왔는데, 자신의 책뿐 아니라, <미미책>으로도 2권을 선정해달라고 하셨어요. 그분이 적은 메시지가 너무 감동이어서 기억에 남아요 ‘책 읽는 너희가 있어서 이 지구가, 우리 미래가 너무 든든해! 고마워’라고요.”

무겁고 어두운 마음으로 왔다가, 아이들에게는 희망을 주기 위해 쓴 글을 보며 부부는 최근 읽은 책 제목처럼 “슬픔이 방문해서 희망을 던져놓고 간 느낌”이었다고 한다. 부부는 그의 뜻을 받아 장 그르니에의 <섬>과 <자연의 권리>를 골랐다. 미미책의 첫 고객이 된 청소년의 기억도 선명했다. 성수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었는데, 미미책 서가를 한참 보더니 “이거 진짜 주시는 거예요?” 하면서 자신은 고3인데 미대를 준비 중이라며 <저항의 예술>을 골랐다고 한다. 학생은 입시로 한동안 못 보았지만, 그 형이 대신 단골이 되어 가족 이용자가 되었다며 곧 합격 소식을 가지고 만나고 싶다며 응원을 보냈다. 부부의 소원대로, <바라타리아>는 이렇게 책을 통해 관계를 잇고 문화를 만들어가는 사랑방으로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춘천사람들과 함께 읽고 싶은 책을 추천한다면?

“저는 단연코 돈키호테를 추천해요. 돈키호테는 세르반테스가 유럽 각지의 이야기를 함축해서 엮은 책이에요. 풍차에 뛰어드는 무모한 사람의 이야기를 넘어, 인생에 관한 통찰을 보여주고 있어요. 특히 산초의 인간적인 매력에 푹 빠졌어요. 산초는 어리숙해 보여도 영주가 되고 싶다는 욕망도 있는 평범하면서도 입체적인 인물이에요. 서점 이름도 그가 다스리는 섬에서 살고 싶어서 <바라타리아>라고 짓기도 했을 정도니까요.”

남편 장남운씨는 소위 ‘눈에서 꿀 떨어지듯’ 돈키호테와 산초, 심지어 산초가 끌고 다니던 잿빛 당나귀에 대해서도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아내 강은영씨는 춘천 하창수 작가의 <인생>을 선택했다. 

“지난번 초청작가인 이병률 시인을 통해서 알게 된 작가인데, 책을 읽다 보니 작가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내공이 합쳐져 곳곳마다 지혜를 찾는 즐거움이 있어요. 순서대로 읽을 필요없이 자신의 감정, 상황에 맞는 제목을 찾아 읽으면 ‘지혜처방’을 받을 수 있어요.” 

“오티움 쿰 디그니타테(otium cum dignitate)”, 품격있는 휴식을 위한 공간

부부가 취향은 다르지만 <바라타리아>가 책을 통해 “품격있는 휴식”을 누리는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완벽하게 겹친다. 두 사람은 책방의 모토이자 정체성을 라틴어 “오티움 쿰 디그니타테(otium cum dignitate)”, 즉 “위엄을 갖춘 여가”라고 입을 모은다. 당초 <문학서점>으로 컨셉트를 정하고 부부의 취향을 반영했으나 책방을 이용하는 독자들 즉 무수한 산초들에 의해 서가가 재구성된다. 자신들이 선택한 것이 반영될 때의 존중감, 그 공간을 주인 단독이 아니라 독자들이 함께 구성한다는 상호성 등이 고객들로 하여금 더 큰 애착과 위엄을 느끼게 한다. <작가와의 대화>와 책 속 사진이나 그림의 <전시>,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에 하는 <독서 모임> 등 고객의 눈높이와 지향을 살피고 새로운 기획을 하는 것도 모두 ‘오티움 쿰 디그니타테’의 과정이다. 

서울과 제주 등 물망에 올랐던 곳을 물리치고 춘천을 택할 만큼 애정이 깊지만, 책방 주인으로서 아쉬움도 있다. 강원도에는 “지역서점 활성화 및 지원 조례”가 있지만, 춘천에는 해당 조례가 없어서 책방을 거점으로 하는 독서동아리 등의 지원이 미흡하다. 동네 서점들이 좋은 뜻으로 시작했다가 견디지 못하고 문을 닫는 사례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낡고 나직한 집들이 어깨를 기대고 있는 근화동 당간지주길의 좁은 골목에서 세련되면서도 고즈넉한 3층 신축건물은 주변의 낡음을 초라하게 하지 않았고, 부부의 정다운 마중은 누구라도 오랜 지기로 만들어버릴 것 같았다. 그 다정함에 빠져 이야기를 정리하는 게 더없이 아쉬웠다. 

2월 17일부터 3월 7일까지 동물들이 나이들어갈 권리를 담은 <사로잡는 얼굴들> 사진 전시와 북토크가 예정되어 있다. <바라타리아>가 마련한 “품위 있는 휴식”을 한 명의 산초가 되어 기꺼이 누려볼 참이다.

허소영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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