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근(시인)

“불행한 시기에 사람들은 연대의식을 느끼며 단결하지만, 행복한 시기엔 분열한다. 왜 그럴까? 힘을 합해 승리하는 순간, 각자 자기 공적에 비해 보상이 부족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저마다 자기가 공동의 성공에 기여한 유일한 공로자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서서히 소외감에 빠진다.”

우리에게 <개미>라는 소설로 그야말로 해머로 두개골을 가격 당한 듯한 충격을 안겨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저 주장은 대단한 설득력을 가진다. 그는 이어서 “친한 사람들을 갈라놓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에게 공동의 성공을 안겨주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가족이 상속을 둘러싸고 사이가 벌어지는가? 성공을 한 다음의 로큰롤 그룹이 함께 남아 있는 경우가 얼마나 되는가? 얼마나 많은 정치 단체들이 권력을 잡은 후 분열하는가?”라고 덧붙인다. 탁견이다.

천재는 멀리도 바라보지만, 깊게 정확히 바라보는 사람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면 현재 우리 공동체가 경험하고 있는 이 분열과 연대의식의 붕괴는 어떤 성공에 대한 상실감과 소외감의 부상일까? 이러한 질문의 전제로서, 그렇다면 우리 공동체와 사회는 지금 과연 성공한 것일까? 모든 ‘공로자’들을 소외감에 빠지게 하는 이 승리는 과연 진정한 승리일까?

공동체의 성공 후에는, 저마다 자기가 공동의 성공에 기여한 ‘유일한’ 공로자라고 생각한다는 시니컬한 직관은 그럴듯하지만, 성공 이후 공정하고 상식적인 분배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느꼈을 분노에 대해서 귀 기울이지 않고 성찰하지 않는 권력과 이익 독재자들의 모순에 대해서도 신랄한 비판이 가해져야 하는 것은 아닐까? 

박종철과 이한열 열사의 죽음 이후 6.10 항쟁 때의 연대감, 박근혜 국정농단 규탄 촛불시위 때의 연대감, 윤석열 검찰 쿠데타 규탄 시위 때의 연대감을 붕괴시킬 만한 우리 시민 공동체의 성공이 과연 있었는가에 대한 의문이 황급히 드는 시절이다. 너무나 많은 ‘성공’의 후예들이 분열을 조장하고 독점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아직도 검찰, 사법, 언론, 관료, 재벌 기득권 세력이 장악한 거대 독재 정권 하에서 시름하고 있는 동포들이 지금 얼마나 자신들이 그 체제의 희생자인지 체감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 채 오히려 그들의 동조자가 되어서 앞잡이가 되고 있는 이 현실은,

이미 기득권 세력이 되어서 헛된 앞날을 도모하고 있는 민주당 의원들에게도 책임이 있고, 제대로 싸우지 않는 먹물들에게도 책임이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가르치지 못한 우리 사회의 글러먹은 교육 시스템에 있다. 도대체 우리는 경쟁과 차별 외에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우리나라 교육에 인간이 있는가? 식민지와 군사독재의 그림자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권력자들의 음모다. 개돼지를 다다익선 육성하려는 오래된 음모.

그러나 네탓, 내탓 무슨 소용이 있는가. 분열할 때가 아니다. 나라를 통째로 멸망의 아가리에 갖다바쳐서야 쓰겠는가. 살아야 내 것 가져간 놈들에게 내놓으라고 싸울 수도 있다. 지금 이 싸움은 살기 위한 싸움이다. 살자고! 내 것 내놓으라고 싸우는 생존의 투쟁인 것이다. 아프니까 진지해졌다. 진지하면 반칙인데. 시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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