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란 무엇인가 / 마이클 샌델 / 와이즈베리

며칠 전 춘천의 한 아파트에서 홀로 살던 50대 남성이 숨진 채 발견되었다. 발견되었다는 단어만으로도 남자의 막막했을 삶이 짐작되고도 남는다. 관리사무소의 신고로 경찰이 남성의 집을 찾았을 때는 그는 이미 세상을 떠난 지 보름이나 지난 뒤였다. 간 질환을 앓고 있던 그에게 찾아오는 사람은 없었다. 매달 62만 원의 기초생활수급비를 받았지만, 기초수급비로는 일상조차 어려워 아파트 관리비를 포함한 공과금은 늘 연체 상태였다. 카메라는 친척도 가족도 없이 죽어 간 남자의 낡고 고요한 현관문을 비췄다. 

비슷한 시기 국민의힘 전 의원 아들이 받은 화천대유 퇴직금 50억 원을 뇌물로 볼 수 없다는 1심 판결이 저녁 뉴스를 장식했다. 인터넷 댓글에는 나도 퇴직금 50억 받고 싶어요. 또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댓글들이 빗발치기 시작했다. 최근 몇 주 내내 사회는 정의와 공정에 묻혀 살았다.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아들이 군 생활과 함께 한 책이다. 아들은 대학 2학년을 마치고 군에 입대했다. 서대문구 근처에 있는 수방사로 배치받은 녀석은 생각보다 자주 전화를 하여 때로는 샴푸를, 때로는 선크림을 보내 달라고 해서 달라진 군 문화를 체험하게 했다. 그랬던 녀석이 상병을 달고 난 어느 늦은 날 전화를 하여 책 제목을 일러주며 꼭 사서 보내 달라고 했다. 바로 김영사의 베스트셀러 《정의란 무엇인가》였다. 그 책이 아들의 군 생활에 정의로운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묻지 못한 채 군생활이 끝났고, 그리고 그 책은 아들의 짐에 섞여 집으로 왔다. 꽤 오랫동안 탐독했던 ‘정의’에 대한 기억을 오늘 다시 소환하게 된다. 

어떤 사회가 정의로운지 알려면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소득과 부, 의무와 권리, 권력과 기회, 공직과 명예)을 어떻게 배분하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정의로운 사회는 이러한 것들을 각각 자격 있는 사람에게 배분한다. 어려운 문제는 누가 무슨 이유로 그러한 자격을 갖는지 따져 보는 것이다. 《정의란 무엇인가》

나는 감히 혼자 죽어간 그 남자의 고통을 알지 못한다. 그 남자가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소득과 부, 의무와 권리, 권력과 기회, 공직과 명예)로부터 소외되어야 하는 이유와 권력자 아버지를 둔 아들이 50억을 배분받을 수 있는 자격에 대해 알지 못한다. 차라리 고려시대 음서제가 부활했다면 믿겠다. 

샌델은 사회에서 정의로운 미덕을 갖추는 일은 플루트를 배우는 일과 같다고 했다. 플루트를 들고 직접 행동이라는 연습을 하지 않고서는 공정한 미덕을 갖추기 어렵다. 정의로운 사회가 소중한 것들을 자격 있는 사람에게 잘 배분하도록 직접 행동하고 연습해야 한다. 깊게 경험해야 한다.

탁운순(강원이주여성상담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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