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몇년 전에 저는 소설가 이외수 선생님과 밤새 이렇게 놀았습니다. 제가 지리산 벽송사에서 두 번째 시집을 정리하고 있던 새벽이었습니다.
이외수 선생님께서 한 마디 시를 보이면, 저는 거기에 30초 안에 화답을 하였습니다. 놀아도 이렇게 놀아야지요. 그걸 정리한 한 편이 오늘 올라오는군요. 지리산 그 새벽, 그립습니다. 즉흥으로 서로 왔다리 갔다리 했습니다. 기념 삼아 남깁니다.
꽃망울 하나 터지는데도
살이 터지는 아픔을
겪는다 하였으니
저 왁자지껄한 봄이
거저 오기야 하겠습니까
불현듯
안부를 물어보면
지나간 엄동설한
그대 주변에도
소리 소문없이 세상 떠난 사람
하나쯤은 있으리
이외수
지구가 자꾸만 가벼워져서
이 무슨 소식인가 뒤척였더니
하루는 흰구름 저 끝에 새가 떠나고
간밤엔 애꾸눈 사진사 왼눈이 죽는 소식
하물며 지난 밤엔
지리산 봄눈이 다 녹는 소식
류 근
중략 (中略)
시인은
봄이 오기도 전에
봄이 떠날 것부터 생각합니다
지리산
실상사 섬돌 밑에 게송 한 줄을 묻었습니다
이 세상 떠난 사람들은 해질 무렵 불현듯
풍란 향기로 서럽게 돌아온다고.
이외수
해가 지고 난 후 남겨진 봄날에 꼭 꽃피어 만나기를. 그대여,
류 근
류근 시인의 ‘류근의 시시각각(時詩各覺)’ 코너는 이번 호를 끝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315호(2022년 4월 4일)부터 359호(2023년 2월 27일)에 이르기까지 거의 1년여 기간 동안 페이스북 단상을 전재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류근 시인과 성원해주신 독자님께 다시 한번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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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근(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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