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소녀상과 함께하는 춘천지역 고등학생·대학생 날갯짓」을 소개합니다.

「평화의 소녀상과 함께하는 춘천지역 고등학생·대학생 날갯짓」은 일본군성노예제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해 학습하고 실천하는 자발적 결사체입니다. 학생들끼리 모여 일본군성노예제 문제와 관련한 세미나를 열고 토론을 하고 수요시위에 참여합니다. 매년 가을 춘천시민들에게 일본군성노예제 문제를 알리는 페스타도 개최합니다. 대학생 날갯짓은 일본군성노예제 문제에서 더 나아가 세월호 참사, 광주민중항쟁, 제주 4·3 항쟁을 중심으로 근현대사를 학습하고 직접 기행을 가며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한 실천을 합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3월 1일 아침 9시, 날갯짓은 서울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개학을 그리고 개강을 하루 앞두고 있었지만 제1585차 수요시위에 참여하기 위해 모인 학생들의 표정은 밝았습니다. 버스로 이동하는 동안 강제징용과 수요시위에 대한 간단한 교양을 진행하고 수요시위의 대표적인 노래 ‘바위처럼’을 다 함께 불러보는 등 알찬 시간을 보냈습니다. 

수요시위 장소에 도착해 학생들이 처음 느낀 감정은 ‘분노’였습니다. 수요시위에 몇 번 참여해 본 학생들에게는 익숙합니다. 일본군성노예제 피해자의 명예와 인권을 회복하고, 전쟁과 전시 성폭력이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평화의 장을 방해하는 폭력과 혐오의 언어 때문입니다. 사전에 수요시위를 반대하는 집회에 관한 설명을 듣기는 했지만, 수요시위를 반대하는 집회에서 들려오는 폭력과 혐오의 언어, 심지어는 그 언어들이 학생들에게 직접 향하는 상황에 수요시위에 처음 참여하는 학생 중 당황스러움과 공포감을 느꼈다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제1585차 수요시위 주관단체인 메타버스 교사기획단의 서울 번동중 김동은 선생님은 현장 발언에서 “역사의 주관성과 정확성을 분명하게 구분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역사의 주관성은 역사의 정확성에 기반을 둡니다. 각자의 관점과 가치관에 따라 하나의 역사적 사건에 대한 여러 가지 입장이 존재할 수 있지만, 다양한 해석은 단일한 사실에 대한 해석이며 그 사실에 반하는 이야기는 역사의 주관성이 아닌 역사 부정입니다. 역사의 주관성이 역사의 정확성을 잠식한 상황이 수요시위에 반대하는 집회이며 우리는 역사의 정확성과 진실을 지켜나가야 한다”는 말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정리해 주었습니다. 폭력과 혐오의 언어는 평화의 언어를 이길 수 없다는 확신을 품고 <104주년 3.1절 범국민대회>로 향했습니다.


<104주년 3.1절 범국민대회>에서 양금덕 할머니께 편지를 읽어드린 유봉여자고등학교 서원영 학생 소감

양금덕 할머니께 편지를 쓰기 전, 저는 ‘위안부’와 관련하여 잘 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쓰려고 하니 제가 정말 아는 것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양금덕 할머니뿐만 아니라 다른 할머니들께도, 학생들에게도 와닿는 편지를 쓰고 싶어서 ‘위안부’ 관련 내용을 공부하고 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할머니의 앞에서 제가 쓴 편지를 제 목소리로 읽기가 쉽지는 않았습니다. 혹여나 제가 잘못된 표현을 쓰지는 않았는지 마지막까지 확인하고 다시 읽어보고 또 읽어보는 과정을 거쳤던 것 같습니다. 마이크를 잡고 할머니의 앞에 선 순간 모든 긴장이 풀리면서 제가 왜 이 자리에 와있는지 바로 마음으로 느껴졌습니다. 편지에 쓴 것처럼 미래를 이끌어갈 청소년으로서 아픈 과거를 잊지 않고 일본 정부의 사죄를 받을 때까지 열심히 목소리를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준비한 편지를 천천히 마음을 담아 읽는데, 할머니께서 흐뭇한 표정을 지어주셔서 저의 마음을 다시 한번 굳게 다짐할 뜻깊은 기회였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관심을 두고 직접 목소리를 내며 할머니들과 함께 사죄를 받아내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서원영(유봉여고)


<104주년 3.1절 범국민대회>에서 양금덕 할머님께 평화인권훈장을 서훈한 춘천여자고등학교 이해랑 학생 소감

수여식 행사 며칠 전 양금덕 할머니께 훈장을 직접 수여하는 역할을 부탁받았습니다. 그런데 부끄럽게도 그때까지 저는 양금덕 할머님의 이야기와 일제 강제 동원 문제의 현 실태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훈장 수여식이 다가오고, 아무것도 모르던 저는 이 훈장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양금덕 할머니는 1944년, 중학교를 보내준다는 말에 속아 근로정신대로 끌려가 일본에서 강제 노역을 하셨습니다. 해방 후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으나, 배고픔과 노동에 시달리며 인권이 전혀 존중되지 않는 상황 속에 고통받아 온 피해자들에게 일본 기업은 책임은 물론 노동의 대가조차 지급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양금덕 할머니는 현재까지 약 30여 년간 강제 동원 사실에 대한 일본 기업의 사죄를 요구하며 싸워오셨습니다. 2018년, 대법원은 일본 기업에게 배상할 것을 판결하며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주었지만, 일본은 수출 규제로 답했습니다. 대법원의 판결은 2023년 현재까지도 이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가 양금덕 할머니께 ‘대한민국 인권상’과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하기로 결정했으나, 외교부의 개입으로 취소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에 시민들이 들고일어나 직접 훈장을 서훈하기로 한 것이 이번 훈장 수여식의 이유였습니다. 훈장의 무게를 알게 된 저는 당장 망설여졌습니다. 과연 제게 이 훈장을 전달할 자격이 있는 것인지 감히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강제징용으로 망가져 버린 삶, 그 안에 흘렀던 땀, 그리고 눈물과 외침. 그 모든 노고를 시민들이 인정하고 표창하는 훈장은 중하고도 무거웠습니다. 

하지만 결국 저는 훈장을 옮겼습니다. 벨벳의 상자 안에서, 할머니의 가슴 위로. 청소년들의 자발적 결사체 날갯짓의 대표로서, 연대를 이어나가야 하는 청소년으로서, 기억을 전달받은 후대로써, 무지했던 평범한 사람으로서. 잘 알지 못했던 사람도 배우고 외치고 연대할 수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고 생각하며 저는 자격보다 의미를 찾았습니다. 훈장 수여는 생각보다 빠르게 끝났습니다. 몇몇 사람들과 함께 단상에 올라, 차례를 잠시 기다리다 할머니께 훈장을 걸어드렸습니다. 당시에는 다만 조심스럽게, 실수하지 않는 것에 온정신을 집중했던 것 같습니다. 곧 훈장은 할머니의 가슴 위에서 빛났고, 그날 행사는 행진까지 이어지며 성황리에 마무리되었습니다.

 이해랑(평화의 소녀상과 함께하는 고등학생 날갯짓 대표, 춘천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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