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성 (정의당 강원도당 사무차장)

10년 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소속의 한 비정규직노동조합에서 1년 반 정도 회계를 담당했다. 회계감사가 철저하게 이루어지는 터라 감사일이 다가올수록 긴장도가 높아졌다. 선전전하고 남은 피켓 뒷면에 월별달력판을 만들어 그동안 모아두었던 영수증을 다시 확인하면서 달력판에 꽂았다. 영수증 달력판들을 벽에 쭉 세워놓고 1일부터 순서대로 영수증을 검토하면서 기장내역과 대조해나갔다. 

두꺼운 회계장부를 완성하고 나면 또다시 다른 조합원이 꼼꼼히 감사를 진행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감사보고서는 회계장부와 함께 상급단체인 산별 중앙단위의 감사를 한 번 더 거친 후 대의원대회 안건으로 올라가 수백 명의 대의원 앞에서 논의되었다. 노조는 일정규모 이상의 조직이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회계감사를 당연함 그 이상으로 철저히 해나갔다. 왜냐하면 이 조합비야말로 우리 조합원들이 어려운 현장에서 힘들게 모은 것이자, 차별 없는 세상, 평등한 세상을 향한 투쟁의 씨앗이었기 때문이다.

노동자는 사업장에서의 낮은 처우와 차별을, 위험한 현장을 개선해 인간답게 살고자 노조에 가입한다. 노조가 결성되면 합리적으로 분배되지 않은 회사의 이윤분배 방식이 정상화되어 부실경영 위험이 줄어들고 노동자의 효능감이 올라가 이전보다 안정적으로 회사를 운영할 수 있게 된다. 위험한 일터를 개선하고자 하는 노력이 진행되면서 노동자는 안전하게 일할 수 있고, 회사는 튼튼한 기업이라는 이미지 향상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최근 윤석열정부는 노조부패를 한국사회 3대 적폐 중 하나로 규정하고 강성파업, 불투명한 회계,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손보겠다고 밝혔다. 화물연대 파업을 강경하게 진압하고 건설노조를 폭력집단처럼 묘사하면서 노조를 공격하고 있다. 노사 모두의 상황을 살피면서 균형 있게 접근하지 않고 노조 때문에 회사도 국가도 어려워지고 있다는 듯이 행동하고 있다. 

자신의 생계 수단인 일터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노동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파업과 투쟁은 단기적인 이익에 몰두해 노동자의 처우와 회사의 미래를 놓치고 있는 부패하고 불평등한 일터를 정상화하기 위한 수단이다. 회계와 관련하여 한국사회의 양대 노동조합인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다른 여느 단체와 마찬가지로 투명한 회계감사를 실시하고 대의원대회를 통해 사업운영 계획, 예산결산내역, 회계감사 결과를 낱낱이 보고한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노조를 악마화하는 것이 아니라, 산별노조를 확대하고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해고의 위험 없이 노조에 가입할 수 있는 기반을 정부가 만들어야 가능하다.

윤석열대통령 국정 슬로건은 ‘다시 도약하는 대한민국, 함께 잘사는 국민의 나라’다. 국민의 대다수가 노동자이기 때문에 대한민국이 다시 도약하고 대다수의 국민이 잘살려면 노동혐오가 줄고 노조가입률이 올라가야 한다. 다행히 노조가입률은 2016년 10%에서 2021년 14%로 5년 사이에 4% 증가했다. 정규직 노조가입률이 8% 증가하는 동안 비정규직 노조가입률은 56% 증가했다. 처우가 낮을수록 노조가 더 필요하다는 증거다. 우리 모두에게 든든함을 주는 존재, 노동자가 직접 만든 사회안전망, 노동조합이 더 많아지기를 바란다.

이효성 (정의당 강원도당 사무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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