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흥우(언론협동조합 춘천사람들 이사장)

3·1혁명 104주년을 맞는 소회가 흔쾌하지 않다.

일제에 국권을 빼앗긴 지 9년 만에 일어난 전 민족의 항거는 2개월 동안 2천여 회에 걸쳐 연인원 200만 명을 헤아렸다. 춘천에서도 3월 7일 처음으로 춘천농업학교 학생들과 정명여학당 학생들이 무장경찰의 포위 속에 교내에서 수업을 거부하고 만세를 불렀다. 이후 수차례에 걸쳐 시도된 만세시위는 번번이 경찰의 사전 검거로 실패하고 말았지만, 이미 각성하기 시작한 근대적 시민의식까지 말살할 수는 없었다.

따지고 보면 국권의 상실은 1910년 8월 29일이 아니었다. 가깝게는 1905년 을사늑약이었고,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1894년 갑오농민항쟁이 좌절되고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할 때부터였다. 일찍이 갑오년의 농민군은 세계사의 변화에 발맞춰 반제·반봉건의 깃발을 높이 들고 자주적인 근대화를 추구했다. 아래로부터의 자주적 근대화를 좌절시킨 세력은 청일 양국의 군대를 끌어들여 제 나라 백성을 학살한 조선왕조의 기득권세력이었고, 그 기득권세력이야말로 이 나라를 끝내 일제에 헌상한 주범이었다.

그러니 1919년 3월의 전 민족적 항쟁은 그 25년 전 갑오년 농민항쟁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고, 그 결과 공화주의에 입각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탄생했기에 우리는 이를 ‘3·1운동’이라는 모호한 용어 대신 ‘3·1혁명’이라고 지칭하는 것이 타당하다. ‘3·1혁명’은 1948년 제헌헌법 전문에도 수록될 용어였지만, 친일파들이 득세한 한국민주당이 반대해 지금과 같은 ‘3·1운동’으로 수정된 것이다.

그런데 “세계사의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국권을 상실”했다니!

과연 세계사의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세력은 누구인가? 그때나 지금이나 정치 권력을 장악한 무리가 아닌가? 더욱이 일본이 “과거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와 경제, 그리고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파트너”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지금 이 나라의 지도자라는 게 그저 놀랍다.

아찔한 현기증이 몰려온다. 그의 말대로 “변화하는 세계사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미래를 준비하지 못한다면 과거의 불행이 반복될 것이 자명”하다.

《맹자孟子》에 “행하여 얻는 바가 없으면 돌이켜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는다(行有不得 反求諸己)”라는 말이 있고, 공자도 《중용中庸》에서 “군자는 책임을 자신에게서 찾고, 소인은 남에게서 찾는다(子曰 君子求諸己 小人求諸人)”라고 했다지만, ‘내 탓이오’라는 겸양의 말은 이렇게 쓰는 게 아니다. 게다가 제 눈의 들보는 애써 보지 않으면서 남의 눈의 티끌만 빼내겠다고 용을 쓰는 어불성설은 더더욱 아니다. 안중근 의사의 총탄에 쓰러지면서 “바보 같은 놈”이라고 읊조렸다는 이토 히로부미가 지하에서 웃을 일이 아닌가!

전흥우(언론협동조합 춘천사람들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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