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틀을 찾아서 / 김도연 / 문학동네

우리는 상실의 시대를 살고 있다. 사는 데 지쳐 뚜렷한 가치나 삶의 목표를 잃고, 무엇을 잃고 사는지도 모른 채 주어진 자기 몫의 시간들을 조금씩 갉아 먹으며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IMF가 발표한 GDP 순위 세계 13위 국가이고 군사력 순위는 6위를 얘기할 정도로 잘 사는 나라다. 그런데 OECD에 속한 38개 국가 중 한국의 행복지수는 36위로 최하위권에 속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많은 나라가 부러워하는 잘 사는 나라지만 상위권 경제 지표 이면엔 삶의 의욕이나 삶의 가치를 상실한 채 또는 돈 버는 일에 매달리느라 정작 소중한 것들을 잃고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뜻이 아닐까. 

《빵틀을 찾아서》는 김도연 작가의 5번째 단편소설집이다. 표제작인 <빵틀을 찾아서>는 어린 주인공에게 큰 즐거움을 주었던 빵틀을 엄마는 마을의 월남집에게 빌려주어서 찾으러 나서는데, 그 월남집은 재설집으로 재설집에선 대장집으로 대장집에선 고모네인 강밥집에 빵틀을 빌려주었다. 빌려 간 빵틀을 주인의 허락도 없이 임의로 다른 마을 사람에게 빌려주는 것에 대해 ‘나’는 분개하지만, 엄마는 동네 사람끼리 빌려주는 게 인정이라고 말한다. 나는 빵틀을 찾으러 이집 저집 다니면서 각 집안의 내력과 그들 사는 모습을 속속들이 알게 된다. 겉으로 봐서는 모르는 삶의 생생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주인공이 여러 집을 전전하며 빵틀을 찾아 집에 가기 위해 개울에 도착했을 때는 비가 많이 내려서 개울을 건너가는 나무다리가 떠내려가 버렸다. 집으로 돌아갈 길을 잃어버린 것이다. 얼마나 상징적인가? 수록된 9편 소설의 주인공들은 어쩌면 아직까지 찾고 싶은 즐거움, 위로, 안식의 상징일 수 있는 <빵틀을 찾아서> 헤매고 다니며 상실의 시대를 살아내고 있는 우리들의 자화상일 수 있다. 

<탁구장 근처>는 전세금을 올려달라는 집주인의 압박을 잊고자 선수도 아니면서 몽유병자처럼 병적으로 탁구 실력에 집착하는 사내가, <말벌>에서는 퇴직 후 집에서도 찬밥 신세로 밀려난 세 남자가 주말농장에 모여 술 파티를 즐기며 지내는데 원두막 천장에 짓기 시작하는 말벌집을 제거하려 하지 않고 키워서 말벌집 술을 담글 꿈을 꾸다 실수로 말벌집을 건드려 죽음 직전까지 갔다 온 사내가, <셰퍼드>에서는 명견 클럽을 차려 일확천금을 꿈꾸던 친구에게 큰 수입을 기대하며 돈을 빌려주었는데 사업이 망해 빚값 대신 받은 셰퍼드 두 마리를 통제할 수 없어 개에게 끌려다니는 사내가 주인공이다. 공통적으로 안식처를 잃어버린 사내들이 자기 존재감을 느끼게 해줄 무엇인가를 찾으려고 병적으로 집착하는 인물들이다.

<OK목장의 여름>,<말머리를 돌리다>,<마을에서 제일가는 사나이>,<겨울잠>은 가난의 굴레에서 오는 중압감에 시달리며 이로부터 벗어나 자기 존재감을 찾고 싶어 웃픈 일탈에 들어서게 되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다. 꿈과 환상과 현실을 교묘하게 연결하여 작품의 재미를 더한다. 웃기고 재미있는 사건들이지만 한편으로 가슴이 서늘해 오는 것은 이들 인물들이 영악하고 이기적이어서 분노와 적개심을 유발하는 인물들이 아니라 어찌 보면 어리숙하고 순박하기까지 해서 안쓰러운 우리들의 자화상일 수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가는 이들 인물들의 삶의 문제를 분석해 대안을 제시하진 않는다. 다만 우리가 무엇을 잃어버리고 사는지도 모를 때 소설의 구체적인 사건과 대화로 ‘이게 우리 삶의 실상이야!’ 콕 찍어 제시한다. 그러면 독자는, ‘아, 그래 나도 이렇게 살고 있었던 거구나. 내가 뭘 바라고 살았던 거지?’ 그제야 깨닫고 삶에 대한 성찰과 행동의 방향을 정하게 된다. 

김도연의 소설집 <빵틀을 찾아서>는 재미있고 울림이 있다.

 유태안(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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