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구 (문학박사, 춘천문화원 춘천학연구소장)

춘천을 대표하는 유서 깊은 유적으로 가장 앞자리에 청평사와 소양정을 꼽을 것이다. 청평사에는 비움의 철학을 실천한 청평거사(淸平居士) 이자현(李資玄)의 얼과 자취가 오롯이 배어 있기 때문이고, 소양정에는 휴식 공간으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지친 심신을 충전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여유로움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특히 봄이 오면 푸르러지는 소양강과 봉의 산록을 따라 올라보는 운치는 여전히 최고가 아닌가 한다.

 ‘소양(昭陽)’에는 오롯이 춘천의 정체성이 담겨 있다. ‘昭陽’은 솟아오르는 아침볕을 뜻하며, 방위로는 동쪽을 뜻하고 계절로는 봄이란 말이다. 즉 소양이 봄이고 이를 한자로 쓰면 ‘春’이다. 곧 소양이 봄[春]이니 춘천(春川)은 소양강과 동의어라 할 수 있다. 가을을 뜻하고 저녁볕이란 뜻의 자양강(紫陽江 또는 長陽江)이란 지명이 소멸하였다면, 생명과 희망을 내재하고 있는 소양은 ‘봄고을’이란 뜻의 春川에 녹아들어 면면히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점은 결코 우연히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춘천에 사는 주민과 주변 환경 곳곳에 스며들었기 때문에 가능하리라.

 지금까지 춘천만을 다룬 최고(最古)의 지리지(地理志)는 엄황(嚴愰, 1580~1653)에 의해 제작된 『춘천읍지』일 것이다. 이 『춘천읍지』에 춘천에서 가장 역사가 오랜 장소로 소양정과 삼회사를 언급하고 있는데, 두 곳 모두 삼한시대부터 있었다고 전한다. 소양정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소양정(昭陽亭)은 소양강 남쪽 강언덕에 있다. 옛날에는 소양정이라 일컫다가 중간에 이요루(二樂樓)라 불렀으며 후에 다시 소양정이라 부르고 있다. 전해오는 말에 삼한시대에 창건하여 천 년이 되었으니 옛 문물이 완연하다. 을사(乙巳:1605년) 홍수에 무너지고 떠내려가 현판도 이에 모두 유실되었다. 지금 누정(樓亭)은 만력(萬曆) 경술(庚戌:1610년)에 부사 유희담(柳希聃)이 세웠으며, 정해(丁亥:1647년)에 부사(府使) 엄황(嚴愰)이 거듭 수리하고 기와로 바꿨으며, 누정 동쪽에 선몽당(仙夢堂)을 지었다.

 17세기 중반에 이미 천년의 세월을 소양강에 자리하고 춘천의 역사를 굽어보았던 곳이 소양정이다. 그리고 400여 년의 세월이 더 지나 이제 소양정은 1,500여 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소양정을 소재로 생산한 작품이 단연 선두라는 점에서 춘천 최고의 풍광을 자랑하면서 아울러 그에 상응하는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

소양강가에 가장 높은 누각(樓閣)이 있기에 

昭陽江上最高樓(소양강상최고루) 

삼월 안개와 꽃 속에서 느긋하게 노닌다

三月煙花汗漫游(삼월연화한만유) 

지금껏 전해지는 식노(金尙憲의 號)의 발자취

遺躅秪今傳息老(유촉지금전식노)

예로부터 춘주 이름난 여러 곳에 남았어라

名區終古數春州(명구종고수춘주)

구름 위로 솟구친 산들은 모두 시 재료며,        

穿雲遠岫供詩料(천운원수공시료)

지난 비에 자란 풀은 나그네 시름 불러낸다.

過雨平蕪喚客愁(과우평무환객수)

난간 밖 어촌은 그림처럼 매우 아름답고

檻外漁村堪畫處(함외어촌감화처)

울타리에 해지자 모래톱에 그물을 친다.

夕陽籬落罨沙頭(석양리락엄사두)

 <신익성(申翊聖), 『낙전당집樂全堂集』>

봄이 오면 어김없이 소양정에 오르고 또 오른다. 소양정에 올라 춘천의 정체성을 몸에 체화하여 더욱 춘천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한 담금질의 실천으로 오른다. 산에 꽃들이 피고 앞서 이곳에 올라 시를 짓고 읊조린 선현의 발자취를 따라 그들이 느꼈을 시대정신과 우리네 삶의 궤적이 그래도 괜찮은가를 곱씹어본다. 소양정에서 바라보는 자연 풍광 모두가 시 재료이고 주변에 자라는 풀이며 나무에는 우리네 일상의 한숨을 달래줄 이야기가 있다. 여기에 고산 뒤로 넘어가는 저녁 햇살에 지친 몸에 군불 쬐듯 온기를 받고 있으면, 세상만사와 우주가 고스란히 내 가슴에 내려앉으니, 이곳이 내 마음의 보물 1호 소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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