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흥우(언론협동조합 춘천사람들 이사장)

500년 전 영국의 정치가이자 법률가였던 토마스 모어는 그의 책 《유토피아》에서 모든 사람이 6시간만 일하는 이상사회를 그렸다. ‘어디에도 없는 세상’인 유토피아는 말 그대로 실현 불가능한 상상 속의 이상향일 뿐이었다.

그러나 500년이 지난 지금 적어도 노동시간만을 놓고 본다면 그의 이상향이 도무지 실현 불가능한 사회만은 아닌 세상이 됐다. 이미 30년 전 제레미 리프킨은 그의 책 《노동의 종말》에서 정보 기술의 발달과 자동화의 영향으로 기계와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할 것이라고 예고했고, 제4차 산업혁명을 목전에 둔 지금 그의 예측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18세기 산업혁명의 주역이었던 기계는 이제 로봇과 인공지능으로 대체되면서 농업과 공업, 심지어 서비스업에서까지 노동이 설 자리를 빼앗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익히 알다시피 기계와 로봇이 인간 노동을 대체한 사회는 유토피아와 거리가 멀었다. 노동을 대체한 기계는 더 많은 재화를 만들어냈지만, 공급의 증가는 수요의 증가를 동반했고 기계에 종속된 노동은 더 가혹하고 비참해졌다. 로봇과 인공지능의 위력은 기계에 비할 수조차 없다. 제레미 리프킨은 제조업과 농업, 그리고 서비스업에서 수천만 개의 직업이 사라질 것으로 예측했고, 10년 전 UN에서 발간한 《미래보고서 2040》도 가까운 미래에 현재 직업의 70%가 사라질 것이라고 보고했다.

그러나 일자리의 감소는 노동의 종말이 아니다. 제레미 리프킨이 우려했던 대로 기술혁명이 가져온 풍요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노동자의 경제적 운명은 계속 나빠질 뿐이었다. 디지털혁명이 초래한 생산성의 향상과 노동력의 감소가 인류를 유토피아 대신 디스토피아로 이끌 거라는 역설은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그 까닭은 자본과 시장이 생산과 이윤 창출에만 골몰하기 때문이다. 일자리의 감소가 소득의 감소로 이어지는 한 노동의 종말은 가능하지 않으며,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은 더더욱 아니다.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6시간을 일하는 대신 누군가는 단 한 시간도 일하지 않는데 반해 누군가는 12시간을 일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노동개혁’이라는 미명으로 어설프게 내놓은 ‘주 69시간 노동제’에 대한 거센 반발은 정부가 국민 대다수의 삶의 질을 높이는 대신 기업의 이윤 극대화를 위해 국민에게 더 많은 노동을 강요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경제 규모 세계 10위의 선진국이라는 나라의 ‘삶의 질 지수’가 OECD 하위권에 머물고, 자살률 1위 출생률 꼴찌인 나라에서 국민에게 더 많이 일하라는 정부는 누구를 위한 정부일까?

제레미 리프킨은 노동의 종말이 문명화에 사형 선고를 내릴 수 있지만, 새로운 사회 변혁과 인간 정신의 재탄생의 신호일 수도 있다며 “미래는 우리의 손에 달려 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 미래는 우리의 손에 달려 있다. 더 적은 노동과 더 많은 소득이 보장된 복지사회는 절대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저작권자 © 《춘천사람들》 - 춘천시민의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