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언론 <춘천사람들>이 ㈜알플레이와 제휴해 인도네시아 길리 여행을 기획했다. 2000년대 이후 발리와 함께 인도네시아의 대표적인 관광 휴양지로 각광을 받는 롬복섬(Lombok)에 딸린 길리는 롬복 사투리인 사삭어로 ‘작은 섬’을 뜻한다. 길리섬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으로 불리는 ‘길리 트라왕안’은 ‘죽기 전 반드시 가 봐야 할 10대 휴양 섬’으로 꼽힌다. 이에 지난 1월 중순부터 약 한 달 동안 인도네시아를 여행한 조각가 김수학 작가의 페이스북 여행기를 연재한다. 정리: 전흥우 이사장

1월 15일 싱가포르 창이항공에서

인도네시아로 들어가기 위해 싱가포르 창이공항에서 탑승 대기 중.

저녁 9시에 도착해서 아침 6시까지 공항 노숙하고, 뼈마디와 근육을 주물러가며 기어 나왔다. 창이가 노숙하기 참 좋은 공항이다.^^ 나는 아직은 노숙해도 말짱하다. 잃어버린 노마드의 DNA가 스멀스멀 몸 안쪽 어딘가로부터 차오른다~

얍!


1월 16일 비 내리는 발리

발리는 우기라는데 진짜 비가온다. 잠깐 오지 않고 장마철 비가 온다.

우기에 비가 오는 것에는 불만이 있을 수 없으나 엊그제까지 눈을 치우다 이렇게 비가 오니 별일이네.

3천 원짜리 매운 치킨 덮밥을 먹다가, 큰 결심하고 5천 원짜리 커피를 마시는 것은 다분히 비 때문이다. 코끼리 오줌보 터지듯 비는 잘도 오고 궁시렁궁시렁….

천둥은 을러대고 번개는 맥락 없이 껌뻑거린다.


1월 18일 쿠타에서 우붓으로

쿠타에서 셔틀 버스를 타고 우붓에 왔다. 승객은 나 혼자였다가 중간에 꼴랑 한 명이 더 탔다. 기름값에 턱없는 수입이다.

숙소에다 짐을 내려놓고 온종일 걸었다. 걷다가 우연히 인도네시아에 살았던 포루투갈인 안토니오 블랑코 미술관에 들렀다. 마음에 좋은 몇 개의 작품과 시큰둥한 수많은 작품과 작업실과 생활공간을 둘러 보았다. 원초적인 생명력을 여색과 춤으로 표현하며 한평생을 유복하게 살았던 듯하다. 서양인 중심의 세계관이 적지 않게 표출되어 마음과 속을 불편하게 했다.

미술관을 나와 대형 마켓에 갔다. 헤어 블러쉬와 수건 등을 샀다. 저가 항공사가 기내 화물을 7kg으로 규정해 놓아서 양말 하나, 팬티 한 장을 더 챙기지 못했으니 수건을 챙길 수는 없었다. 꼭 가지고 가고 싶은 렌즈도 내려놓았다.

공항에서 보딩패스 주는 승무원이 실실 웃으며 10kg까지 괜찮다고 7kg으로는 어디서 확인한 것이냐 물었다. 저울로 재가면서 7kg을 겨우 맞추었는데 사람 때릴 뻔했다.

돌아가는 길을 지도에 2.1km 남았다는 것을 확인하고, 30분 걸어 4.3km로 늘려 놓았다. 구글 지도에 가는 길과 거리와 시간이 표시되는데 어디서 이런 ‘듣보잡’ 재능이 생겼을까? 크랩 오토바이에 실려서 숙소로 돌아왔다. 이 사실 아무도 모른다.

저녁을 먹는데 또 비가 엄청 내렸다. 커피도 이미 마셨는데 피자를 한 판 주문해 들고 왔다. 아침엔 새벽 시장을 가야겠다.


1월 18일 발리를 떠나며

발리를 떠나 길리 섬으로 가기 위해 탑승을 기다린다. 별 볼 일 없이 느껴지던 발리의 일상이 

벗어나는 버스를 타니 바지가랑이를 꽉 잡고 흔든다. 차창 밖의 여기 너무 좋은데, 만나지 못하고 떠나는구나.

예전 인도를 떠나며 남은 현지 화폐를 소진하였는데 갑자기 골동품점에서 마음을 잡고 놓질 않는 벽걸이 퀼트 장식을 보았다. 지금 같으면 어떻게 해서 가지려 했겠으나, 그때는 주머니에 남아있던 만 원 정도의 돈으로 뭐 살 수 없겠나 주인장에게 미련을 부렸다. 그렇게 얻은 것이 오랜 세월 흔적이 있던 붉은색 퀼트 복주머니다.

가끔 짐 정리하다 눈에 띄면 그때의 설렘이 느껴진다. 책상 서랍에서 발견된 연애편지마냥 쑥스럽고 따뜻하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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