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흥우 이사장 

시나브로 꽃들이 앞다퉈 피어나면서 갑자기 눈이 어질어질하다. 화창한 봄날 흐드러지게 핀 꽃들을 보면 우울했던 기분도 이내 좋아지기 마련이다. 저마다의 스마트폰에도 활짝 핀 꽃들이 풍년이다. ‘춘화추월春花秋月’이라고 과연 봄에는 꽃이요, 가을에는 달이다. 일제강점기 춘천 송암동 출신 언론인 청오 차상찬 선생의 말대로 “꽃은 초목군생草木群生 중에 왕족이요 귀족이다.”

인생에서 꽃처럼 가장 찬란한 시절을 ‘화양연화花樣年華’라고 한다. 누구는 살면서 찬란하게 빛나는 날을 꿈꾸는가 하면, 누구는 이미 찬란했던 시절을 돌아보며 삶의 회한에 잠긴다. 누군가에겐 바로 지금이 가장 찬란한 순간일 수 있다.

그러나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말도 있듯이 꽃의 시간은 너무도 짧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했지만, 한때의 찬란함만으로 지탱하기에 인생은 너무 길다. 꽃은 뿌리부터 본래 아름답다는 뜻의 ‘화근본염花根本艶’이란 말도 있지만, 꽃을 권력에 빗대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많다. 필 때 아름다운 꽃은 있어도 질 때 아름다운 꽃은 드문 법인데, 권력이란 대개 필 때조차 아름답지 못다. 아무리 ‘눈처럼 흰 피부와 꽃처럼 예쁜 용모(雪膚花容)’로 치장한들 한낱 술집을 드나들던 ‘노류장화路柳墻花’였다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산의 꼿도 갓고 들의 꼿도 갓고 집의 꼿도 갓다. 어느 꼿이던지 꼿은 다 작년과 일반이다. 그러나 사람은 변천變遷이 만코 경우가 달너지는 까닭에 가튼 꼿을 보는데도 작년의 늣김과 금년의 늣김이 다르다. 작년에 웃든 자者가 금년에 울기도 하고 작년의 울든 자者가 금년에 웃기도 한다. 또 다 가튼 금년의 꼿이라도 사람의 경우를 따러서 그 보는 것이 다르다.” 〈花譜〉, 《開闢》 제68호, 1926.04.01.

청오 선생의 말대로 꽃은 꽃일 뿐이다. 올해 핀 꽃이 지난해 핀 꽃과 다를까. 다 같은 꽃이지만, 꽃이 달라 보이는 건 보는 사람의 처지와 감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자연은 그대로인데 사람 사는 세상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순간이나마 꽃에 취하는 재미마저 없다면 세상 사는 맛을 또 어디에서 구할 것인가. 

시민언론 《춘천사람들》이 봄맞이 지면개편을 단행했다. 제호 디자인도 바꾸고 지면도 새로 구성했다. 시민언론의 취지에 맞게 춘천시민 곁으로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시민의 참여를 더 넓혀 말 그대로 “시민을 위한 시민에 의한 시민의 신문”의 지향을 분명히 하겠다는 지난 총회의 결의를 이행하기 위한 몸짓이다. 새로 만드는 것보다 망가진 것을 고치는 것이 늘 더 어려운 법이다.

‘마른 나무에도 꽃이 핀다(枯木生花)’고 했는데, 가지가 조금 썩거나 부러졌다고 꽃을 피우지 못할 까닭이 없다. 또 ‘꽃은 화려하지만, 열매를 맺지 못한다(華而不實)’면 아무 소용이 없다. 거름을 충분히 주고 썩거나 상한 부위를 잘 치료하면 꽃도 피고 열매도 맺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금상첨화錦上添花’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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