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언덕교회 박영주 목사

3·1절 이후로 이어지는 윤석열 정부의 외교 참사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한쪽에서는 묵은 숙제를 해결했다며 환영하지만, 다른 쪽에서는 나라를 팔아먹은 이완용에 비유하며 아무것도 얻은 것 없는 굴욕적인 외교라 참사라고 평가하고 있다.

춘천 지역에서도 길거리마다 다양한 의견이 게시된 현수막이 걸리고 서명운동을 전개하는 등 민심이 들끓고 있다. 지난 3일 시청광장 앞에서는 ‘민주주의와 민생, 사회 공공성 실현을 위한 춘천공동행동’이 출범해 ‘외교 참사 비판 1000인 시국선언’을 발표하기도 했다.

선뜻 나서기에 주저할 법도 한 종교인들도 팔을 걷고 나섰다. 온라인에서 윤석열 정부 규탄 서명운동을 펼치고 있는 푸른언덕교회 박영주 목사를 만나보았다.

온라인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시작된 운동인가?

감리교는 선출된 감리·감독(비숍: 감리교의 감독, 가톨릭·정교회·성공회에서 주교를 의미한다)이 있다. 기준 일정 수 이상의 교회가 모여 지방회를 형성하고, 지방회가 모여 연회를, 연회가 모여 총회를 형성하는데, 지방회의 장이 감리사, 연회의 장은 감독이다. (총회의 장은 감독회장)

각종 이슈가 발생하면 감독회의에서 논의를 통해 결정한다. 이번 서명운동의 경우 현직 감독님들보다는 전직 감독님들이 주도했다. 현 정부의 정치를 보면서 목소리가 있어야 한다는 전직 감독님 몇 분의 의견이 있었다. 이분들을 중심으로 카톡을 통해 서명을 받기 시작했다. 교단의 모든 목회자들이 동참하는 것은 아니지만 교단 차원에서 전개되고 있다. 전국 8천여 명의 목회자가 있는데, 1천 명의 참여를 목표로 하고 있다.

목회자 사이에서도 정치적 성향이 다를 수 있지 않나?

물론이다. 사실 지금은 소위 진보 성향보다는 보수 성향이 훨씬 강하다. 하지만 감리교는 기본적으로 사회참여에 적극적인 교단이라고 할 수 있다. 오히려 현재 활동이 많이 줄어든 부분이 있다.

춘천에서는 몇 분의 목회자가 참여했나?

춘천 지역은 동부연회다. 춘천만이 아니고 인근 지역이 포함된다. 동부연회에서 10여 명의 목회자가 참여했다.

서명운동을 통해 퍼지고 있는 내용에 덧붙이고 싶은 것이 있나?

대부분 마음에 들지만 ‘자진해서 내려오라’는 식의 문구는 개인적으로 조금 약하다고 생각한다. 내려올 사람도 아니다. 조금 더 정확하고 강력한 표현이 들어가면 어떨까 한다. 윤석열 정부에 대한 개인적인 평가는 인터넷에 비공개로 적어둔 것이 있다. 그것을 잠깐 읽었으면 한다.

‘군사 정권 독재 시절을 보내면서 자주·민주·평화·통일을 위해 수많은 싸움을 통해 피를 흘렸다. 민주 열사들은 무지막지한 독재 권력에 맞서다가 주검이 되었다. 세월이 흘러 대한민국은 자주·민주·평화·통일의 시대를 열어 가는 듯 보였다. 그런데 군사 정권 독재 시절 때보다 더한 무지막지한 정권을 만나고 말았다. 바로 검찰 정권이다. 무너지는 민생 앞에 국가는 보이지 않는다. 국민들은 살기가 너무 힘들고 어렵다고 아우성을 쳐도 국가는 대답하지 않는다. 지난해 10월 29일 이태원 참사로 수많은 국민이 생명을 잃었음에도 국가의 책임이 아니라며 발뺌하고 있다. 지자체들이 난방비 폭탄에 5만 원, 10만 원을 시민들에게 지원한다고 했을 때, 정부는 오히려 지원하는 지자체에 대해 페널티를 부여할 것이라고 협박한다. 도대체 이게 정상적인 나라라고 할 수 있을까? ‘바이든’을 ‘날리면’이라는 거짓말만 뻔뻔하게 잘한다. 

1주일에 69시간 일하라고 국민을 일만 하는 소·돼지로 만들려고 하고 있다. 잠자는 시간 빼고는 일만 하라고 한다. 그러면서 노조는 폭력배 취급한다. 브레이크 없는 윤 정권의 폭주 기관차가 민생안전, 안보, 인사, 외교를 망치며 휘젓고 달리고 있다. 최근에는 대법원판결로 확정된 일본 전범 기업들의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를 우리 기업들이 대신 배상하겠다고 선언했다. 일본 자민당 국회의원은 일본의 완승이라고 말했다. 망신도 이런 망신이 또 어디 있다는 말인가. 일본의 침략을 정당화하고 일본의 속국임을 스스로 선언한 것과 다름없다.

3·1절에는 일장기를 게양하는 사람도 생겼고 천공이라는 스승은 친일이 만사형통이라고 떠들며 다닌다. 여기에다가 친히 친일파가 되겠다는 도지사까지 나타났다. 마치 이완용이 부활한 듯 친일파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

윤 정부의 국가 운영 능력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나라가 망국의 길로 향하고 있다. 고통받는 국가들은 국가의 존재를 국가의 존재다 이유를 묻고 있다. 분노하고 저항해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애국이요. 나라 사랑이다.’

종교인으로서 사회참여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이렇게 하는 이유 무엇인가? 개인적인 기질인가? 

교회 안에서 보수적으로 성장했다가 신학교에 가게 되면서 또 다른 세계에 눈을 뜨게 됐다. 87학번인데 60년대 처음으로 대전역에서 시위를 했다. 그리고 곧바로 학교를 쉬고 춘천으로 올라왔다. 내가 가야 할 길을 다시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집이 한림대학교 근처였는데 다양한 책을 읽으며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신학대학교로 돌아가 전혀 다른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당시에 시대적 이유로 인해 그러한 길을 걷는 선배들과 동기들이 있었다. 하지만 졸업 후 제도권 내로 들어와야 하는 현실로 인해 고민도 많았다. 욕도 많이 먹은 것도 사실이다.

원론적인 질문을 던져야 할 것 같다. 이러한 시대, 종교의 역할이 뭔가?

이런 대답이 파장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대답하려고 한다. 종교는 아편이다. 종교는 백해무익하다. 인간은 인간이면 됐지, 종교는 필요 없다. 요즘 방송에서 난리가 난 그 종교도 마찬가지다. 만들어진 종교가 문제를 만든다. 그럼 사람들은 묻는다. ‘너는 왜 목사를 하고 있느냐?’ 솔직한 마음은 빨리 없어졌으면 좋겠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종교가 무용하지만, 빨리 벗고 싶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서 남아서 해야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위안을 삼는다.

남아서 할 일이란 무엇인가?

종교가 사람들을 편향시키고 맹목적으로 만드는 것을 막는 일, 사람들이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경고하는 일이다. 

목회자에게 이런 질문을 할 것이라고 미처 예상하지는 못했다. 조심스럽게 묻겠다. 무신론자인가? 불교처럼 무신론적 종교를 추구한다고 생각해야 할까?

‘무신론 기독교’라는 단어는 모순이다. 그런데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모순은 반드시 필요하다. 밝음과 어둠이 하나로 공존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모순을 따지기 시작하면서 모순에 사로잡히고 만다. 때문에 모순 뒤에 있는 것을 못 본다. 모순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모순 뒤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모순 너머에 진짜가 있다. 그곳으로 가야 한다.

박종일·홍석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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