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고단할 때 찾는 정겨운 ‘난장’

이른 아침은 또 다른 세상이다. 조용한 묵상 같은 풍경들이 새 도화지처럼 펼쳐지며 하루를 잘 써 내려가 보라고 등을 두드려주는 시간. 동이 터 오르고 하루가 문을 삐거덕 여는 아침,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하루를 시작하는 곳을 찾는다. 어느 도시에 가든 그 지역의 특산물을 만나기 위해 꼭 들러 보는 곳이 시장이 아닐까.

춘천에는 중앙시장·서부시장·남부시장·동부시장이 있어 장을 보러 다니던 기억이 있지만, 지금은 규모가 아주 많이 줄어들었다. 그러다 보니 2·7일 5일장인 남춘천역 옆 풍물시장이 인산인해를 이룬다. 대형마트가 바로 옆에 있지만, 그렇게 장마당을 찾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는 어디 있을까?

어렸을 적 엄마를 따라나섰던 시장의 풍경이 그리운 나는 아직 대형마트나 동네 마트에서 깨끗이 담아 파는 푸성귀들이 왠지 삭막해 보인다. 한 바구니를 사면 덤으로 한 움큼 더 얹어 주기도 하고, 얼굴이 익어 단골이 된 사람들에게는 좀 더 인심을 써주는 정겨움이 그리운 건 아닐까?

그래서 심사가 사나운 날, 사람 사는 맛이 그리운 날이면 가끔 찾아 나서는 곳이 후평동 애막골 아침시장이다. 처음에는 동네 할머니들이 자신의 텃밭에서 가꾼 푸성귀를 들고나와 시작한 난전이 지금은 제법 덩치를 키워 웬만한 재래시장만큼 규모가 커진 곳. 도로변에 주차하기 때문에 차량 통행에 다소 불편을 준다는 단점이 있지만, 이른 새벽에 열렸다가 아침이 지나면 문이 닫히는 아침시장의 특성 때문인지 주차단속이 심하지는 않아 여전히 장이 서고 있다.

아직 손이 시린 4월의 아침. 화톳불을 피워 온기를 나누며 분주히 좌판을 오가는 상인들. 어느새 두릅과 달래, 냉이와 머위 순, 쑥들이 그득하다. 요즘은 들에 산에 돋아나는 봄나물들을 그곳에서 가장 먼저 만난다. 이제 조금 지나면 앵두·매실·개복숭아·상추·오이·고추·호박이 계절이 지나는 시간의 흐름을 알려줄 것이다. 각종 채소 모종과 쑥개떡, 해산물과 김치, 김이 오르는 가래떡과 명절 부침개까지 먹거리가 즐비하게 펼쳐지기도 한다. 게다가 애막골 시장 중간쯤 애막골 등산로에서 내려오는 좁은 오솔길이 있어 간단한 등산을 산책처럼 마치고 내려오는 사람들이 따끈한 어묵 국물로 한기를 식히기도 하고, 김밥 한 줄로 간단한 요기도 하는 곳.

몹시 추운 겨울 대파 잎사귀가 바스락 얼어버리는 한파에도, 장맛비 내리는 궂은 날에도 비닐로 지붕을 만들어 덮어가며 장마당을 열어가는 사람들이 거기에 있다. 살아가는 일이 힘겹다고 생각될 때 터벅터벅 걸어 장마당을 지나다 보면 삶이 힘들고 그렇게 고단해도 또 ‘살아가는 모습이 다 그렇지’. 긴 한숨 한 번으로 오늘 열심히 살아갈 에너지를 공급받기도 하는 곳. 춘천 후평동 애막골에는 오늘도 정겨운 난장, 아침시장이 열린다.

백경미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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