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이야기

시민언론 《춘천사람들》이 ㈜알플레이와 제휴해 인도네시아 길리 여행을 기획했다. 2000년대 이후 발리와 함께 인도네시아의 대표적인 관광 휴양지로 각광을 받는 롬복섬(Lombok)에 딸린 길리는 롬복 사투리인 사삭어로 ‘작은 섬’을 뜻한다. 길리섬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으로 불리는 ‘길리 트라왕안’은 ‘죽기 전 반드시 가 봐야 할 10대 휴양 섬’으로 꼽힌다. 이에 지난 1월 중순부터 약 한 달 동안 인도네시아를 여행한 조각가 김수학 작가의 페이스북 여행기를 연재한다. 정리: 전흥우 이사장

1월 30일   ‘바가지’의 연속

매사 나의 마음대로 되는 것이 어려운 일이다. 이 아저씨는 구두 수선공인데 1천600원을 받아야 한다고 강변하더니 멋지게 고쳐 놓았다. 일주일 만에 원상복구 되었다.

숙소에 묵으며 저녁에 “하루 더 연장할게요” 했더니 “Okay~” 흔쾌하게 대답하고, 다음 날 다른 직원에게도 하루 더 묵겠다 했더니 또 “오케이^^”

그러더니 오후 두 시에 왜 체크아웃을 안 하느냐고 쫓아왔다. 내가 웃으며 상황은 이러저러한 것이고, 잘못은 온전히 너희들이 한 것이니 절대 못 나간다며 결기를 보여 주었다.

아침나절 다시 카운터에 결제하자고 했더니 다른 직원이 앉아 미리 작성한 서류를 보이며 벌금 2만 루피아(약 1만6천 원)을 내란다. 내가 기막혀하며 웃으면서 그동안의 정황을 이야기하니 이 친구는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고 한다. 다시 두 시간 후에 체크아웃하자고 하니 돈을 더 달라고 한다.

“너희 사장 어딨어? 어제 나랑 사우나도 하고 다 했어. xx야!”

그제서야 결제한다.

약국을 찾아 헤매다 자전거 릭샤를 타고 약국에 가자고 했다. 병원으로 가서 “여기”라고 주장해 내가 아니라고 하면 또 가고 해서 약국에 겨우 들렀다. 두통약을 산 뒤 약사에게 저 릭샤꾼이 얼마 받기를 원하는지 물어봐 달라고 했다. 5만 루피야를 달란다.

내가 여기 오는데 5천 루피야를 약속했는데 처음 지점으로 돌아가는 것까지 하면 2만 루피야면 충분할 것 같다고 릭샤꾼에게 전하니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간단한 직선도로를 자꾸 옆길로 빠지고 돌아오고를 반복하더니 5만 루피아를 달라고 한다. 2만1천 루피아를 전해주고 온갖 욕을 먹으며 돌아왔다.

오래 살자^^

 

2월 2일  수라비야에서 시작된 고행

하루를 엉망으로 구겨놓고 사는 듯한 일상이다.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이 호텔에서 저 호텔로 결국 알고 보면 이 침대에서 저 침대로 옮겨 사는 생활이었다.

지금은 몸 상태가 90%지만, 가끔 70%로 떨어지기에 이렇게 좀비처럼 발걸음 하나하나를 조심하며 지내고 있다.

수라바야에서 시작된 이 고행이 내일 마나도에서는 종료되기를 기대해 본다. 열기는 거의 빠졌는데 삭신이 너무 쑤시고 음식에 대한 거부감이 여전하다. 저녁마다 내리는 비가 무엇도 어쩌질 못하게 하고 있다.

 

2월 4일   회복

일상이 돌아오는 것은 이렇게 무심하다. 따뜻한 야챗국 한 그릇에서 마른 땅이 존재함을 느꼈다고나 할까. 발걸음에 힘이 들어가고 짓누르던 가방 무게가 견딜 만해졌다.

게을러진 몸에 에너지만 채우면 되겠다. 걱정해 주신 소중한 분들께 감사하다.

 

2월 9일   자카르타 아트페어

자카르타 아트페어에 다녀옴.

굳이 날짜를 맞추어 비행기를 타고 왔는데, 덤덤하다. 아시아 최고 규모이자 세계 10대 아트페어로의 발돋움이라는 설명에 이끌려 오게 된 것인데 아무래도 본 아트페어는 가을이라는 안내가 맞는 것 같다.

젊은 작가들 작품이 중심이 된 듯한데, 추세를 반영하듯 장식적이고 라인이 강조되고 표면 질감과 디테일이 무엇인가 아우라를 만드는 호소처럼 느껴진다. 가끔 진중하고 과다한 호객행위 같은 연출이 오히려 트렌드로 익숙하다.

인도네시아의 젊고 반짝이는 작가와 셀럽의 모습은 축제장다운 생동감으로 좋았다. 작품가격은 전체적으로 구매 충동을 자극할 정도. 작품을 보며 걷다가 뒤돌아 기성 유명작가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것을 찾게 되는 것이 나만의 강박은 아닐 것.

또 다른 안전벨트의 의미, 그리고 한계. 반짝이는 것이 모두 별은 아니지만, 밤하늘을 빛으로 채운다.

 

 

2월 10일   발리로의 귀환

발리로 근 25일 만에 돌아왔다.

자카르타에서 밤늦게 연착으로 지치다 발리에 들어서니 집에 온 듯하다. 비는 내리고 도미토리 2층 침대를 선택당해 버튼 누르고 졸도.

아침 일찍 해변을 걷다가 나에게 좋은 아침을 급식하기로 결정^^ 오늘 하루를, 그리고 올 한해를, 또 그리고 나의 삶을 성찰한다. 소중하게 살아야겠다.

스스로 타박하지 말고 가끔은 안아줘야지. 때때로 거친 바람도, 모진 비도, 그리고 시련도 닥치는데 너로 인해 깊이 애달픈 이, 너밖에 없다. 좋은 아침 복되다^^

 

 

2월 11일   거리 풍경

인도네시아를 생각하면 이끼와 푸름을 생각할 거야. 시간의 엄중하고 도도한 흐름을 이끼만큼 생생하고 집요하게 보여 주는 존재가 있을까? 오늘도 장맛비 소리가 가득한 정원의 잎새들을 흔들며 비가 내린다. 툭툭 어깨를 치면서 웃는다.

언제인가부터 간절하게 염원하는 눈빛을 본다. 높은 장대 위에서도 보고 나무에 매달리는 손끝에서도 본다. 문 앞에 놓인 복을 부르는 음식과 향 연기에서도 본다. 오래전 남인도 폰디첼리로 기억되는 도시에서 보았던, 동트기 전에 가정주부가 문 앞에 색색의 석고 가루로 그림을 그리던 모습을 생각해 냈다. 새벽빛과 함께 행운과 복이 문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깨끗하고 간절하게 부르는 장식화된 그림. 내가 그 그림을 밟고 복으로 문안으로 들어설 수 있다면 참 좋았겠다. 그런 생각을 했었다.

 

 2월 13일   발리를 떠나며

발리를 떠나기로 한 하루 전날, 붉은 듯 물드는 석양을 보여 주었다. 해 질 무렵 비가 오고 흐림으로 모습을 가리며 내외를 하더니 무심히 문을 닫지 않고 라면이라도 먹고 떠나던가.

밤새 바람이 불고 비가 많이 내렸다고 한다. 내 방엔 선풍기가 회전으로 고정되어 돌고 있는데 이 오래된 선풍기가 코를 곤다.

노인네 잔기침 중간중간 어김없이 코를 곤다. 숨소리도 너무 큰데 코도 곤다. 이를 안 가니 행복이다. 

빗소리, 바람소리를 듣지 못했다. 공항으로 가는 길, 해변에 나서니 어둠 속에 구름이 검게 날리고 파란 바다에 흰 파도가 거칠게 넘어온다. 어둠 속에 서성거리는 그림자는 추억을 더듬고 있었다.

금속 탐지기를 메고 헤드폰을 담담히 쓰고 혀끝을 허공에 날름거리며 타인의 추억을 검색하고 있다. 파도는 끊임없이 백사장에 물을 뿌려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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