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은 봄의 도시다

 

바딤 아쿨렌코
중앙대 RCCZ연구단 
  연구교수

나는 중학교 때부터 한자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한국 이름과 지명을 종종 한자를 통해서 분석해 머릿속에 담는다. 춘천이라는 지명을 처음 들었을 때 ‘아하, 봄의 도시’라는 생각부터 든 건은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2015년 한림대 학생들에게 러시아어를 가르칠 때까지 춘천의 봄이 실제로 어떤지는 알지 못하였다.

내가 태어나 평생을 보낸 고향 블라디보스토크는 봄의 도시와는 거리가 멀다. 차라리 바다의 도시라고 하는 게 더 어울린다. 항구도시에 봄이 오면 차디찬 겨울바람이 아침에 안개로 바뀔 뿐이다. 또한,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 차량이 보행자보다 더 중요하므로 도로는 넓고 인도는 좁다. 나무와 화단도 그리 많지 않다. 봄이 시작되면 얼어붙은 바다가 녹기 시작하고 도시 주변 숲에서 수집한 복수초 같은 꽃을 파는 사람들이 거리에 보이기 시작한다.

춘천은 전혀 다르다. 물론 겨울에 호수 일부가 얼음으로 덮이고 봄이 되어야 녹기 시작하지만, 겨울에도 의암호에서 카누를 탈 수 있어 해빙을 봄의 특징으로 부를 수는 없다. 그러나 도로와 인도를 따라 가로수와 화단이 있어 19세기 러시아의 어느 작가가 낭만적인 작품에서 서술했던 것처럼 봄이 시작되면 춘천은 다양한 색상으로 꽃을 피우고 그다음 도시 전체가 녹색으로 뒤덮이기 시작한다.

벚꽃·개나리·목련·진달래·철쭉 등 알 수 없는 다양한 꽃들이 순서로 피어나기 시작할 때면 회색 콘크리트 부두와 푸른 바다의 도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태어난 내게 춘천의 푸르름과 알록달록한 봄은 한마디로 동화 그 자체와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춘천은 블라디보스토크와 유사한 점이 있다. 봄은 농사가 시작되는 계절이다. 러시아인들에게 봄, 특히 5월은 감자를 심는 계절의 시작을 의미한다. 감자는 러시아에서 가장 대중적인 음식이다. 거의 모든 수프에 감자를 넣거나 밥처럼 감자를 주식으로 먹는다. 그래서 러시아인 중 감자를 심어본 경험이 없는 사람은 거의 없다. 자기가 농사를 지으려는 의지가 없어도 어릴 때부터 할머니네 마을 앞에 있는 밭이나 부모의 별장에서 감자를 심어 본 경험이 있다. 그래서 어느 봄날 자전거로 소양호 주변을 돌아다니다가 습한 밭 냄새와 함께 감자 심는 모습을 봤을 때 바로 러시아의 봄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5월 초가 되자 밭은 감자 싹으로 온통 녹색으로 변하였다. 감자밭을 볼 때마다 고향에 대한 추억이 떠올랐다.

춘천의 봄 향기를 맡으며 감성에 젖다 보니 갑자기 텐트를 가지고 숲으로 가고 싶어졌다. 춘천의 공원에 핀 꽃들 사이에서 뛰어놀며 달콤한 꽃향기에 빠져들고 싶어졌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도 봄이면 소풍이나 캠핑을 많이 다녔다. 하지만 연해주의 봄은 위험하다. 숲에는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지닌 곤충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춘천에는 그런 곤충이 없다. 다만 설악산에 그런 곤충이 서식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가끔은 아침에 일어나면 고향 블라디보스토크 바다의 짠 내음을 코로 숨 쉬고 갈매기의 울음소리도 듣고 싶다. 그러나 춘천의 봄, 꽃향기와 평화로운 새들의 지저귐으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랜다. 춘천은 봄의 도시다.

 

저작권자 © 《춘천사람들》 - 춘천시민의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