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몹시 빠르게 흐른다. 비 그친 일요일 오후, 마냥 누워서 게으름 피우고 싶은 ‘귀차니즘’을 극복하고 집을 나섰다. 운동이 부족한 현대인이기에 틈나면 어디든 걷자고 다짐했기 때문이다. 가장 가깝고 만만한 자연을 찾아 지도를 검색하다 보니 ‘국사봉’이라는 지명이 눈에 들어온다.

국사봉은 퇴계동과 정족리 사이에 솟은 봉우리로, ‘국사’ 과목이 저절로 떠오르는 야트막한 야산은 해발 203.3m이다. 나 같은 체력에는 바로 이곳이 ‘딱이다’ 싶었다. 국사봉을 검색하면 정말 수많은 국사봉 지명이 나오는데, 전국의 산봉우리 중 가장 많이 쓰이는 이름이라고 한다. 한자는 조금씩 다르지만, 임금이 있는 곳을 바라보며 국가를 생각하는 봉우리라는 의미는 비슷하다.

춘천의 국사봉은 아파트가 즐비한 퇴계동 외곽에 자리한 동심삐아제어린이집 앞에서 시작한다.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면 왼편으로 현대아파트·그린타운·e편한세상 등 쭉쭉 솟은 아파트촌이 보이는데, 도심 속에 진짜 숲이 있다는 게 신기하게 느껴졌다. 이런 게 바로 숲세권일까? 하긴 저 아파트 숲도 원래는 진짜 숲이었을 게다.

한 10분 정도 걸었을까. 국사봉 정상을 가리키는 이정표를 따라 살짝 가파른 길을 오르자 도심과 멀어진 풍경이 펼쳐졌다. 전날 비가 내려 땅은 촉촉했고 나무들이 내뿜는 향기는 더없이 상쾌했다. 마지막 난코스(?)인 계단만 오르면 어느덧 정상을 만날 수 있다. 

이곳에는 ‘國士峰望祭塔(국사봉 망제탑)’이라는 조형물이 있는데, 춘천의 국사봉은 ‘선비 사士’를 쓴다는 걸 알았다. 전국적으로 20~30곳에 이르는 국사봉의 한자는 대개 ‘스승 사師’를 쓴다. 1919년 고종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자 춘천의 선비들이 이 봉우리에 올라 한양을 향해 제사를 지냈다는 데서 국사봉이라는 지명이 유래했다고 한다. 망제탑 부근에는 쉬어갈 수 있는 벤치와 다양한 운동기구가 있었는데, 이 ‘산스장(산+헬스장)’에는 운동하는 사람들, 맨발 걷기를 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어쩌다 큰 볼륨으로 음악을 듣는 어르신들을 만나겠지만, 이것 또한 ‘산스장’의 매력 아닐까?

어느덧 길어진 그림자와 함께 내려오는 발걸음이 가볍다. 한 시간이면 오르내릴 수 있는 가까운 행복, 아주 근사한 풍경은 없지만 잠시라도 도시의 삭막함을 벗어날 수 있는 국사봉에 자주 찾게 될 것 같은 예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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