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흥우 이사장

대통령이 취임한 지 1년이 지났다. ‘일각(一刻)이 여삼추(如三秋)’라는 말은 들어봤어도 1년이 10년 같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지난 10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출범 1주년을 맞은 윤석열 정부가 전국 대학교수 345명이 참여한 전문가 평가에서 100점 만점에 21점을 얻었다고 발표했다. 보통 40점 미만이면 낙제인데 21점이라면 점수라고 말하기도 낯뜨겁다. 빵점이나 매한가지다. 최근의 역대 정부 1년에 대한 종합평가를 비교할 것도 없이 당연히 꼴찌다. 문재인 정부는 73점을 얻었고, 국민으로부터 최초로 탄핵을 당했던 박근혜 정부도 37.4점은 넘었다. 지금까지 꼴찌는 그보다 못한 24.5점을 얻은 이명박 정부였는데, 윤석열 정부가 기록을 경신했다.

그런데도 ‘용산시대’ 1년을 기념하며 돌아오는 주말에 청와대부터 용산까지 걷기 행사를 벌인다고 한다. 권위주의를 탈피하기 위해 청와대에 들어가지 않을 것까지는 봐 줄 수 있었다. 청와대는 1937년 조선 총독 미나미 지로가 경복궁 후원에 지은 총독관저에 살면서부터 이 나라 최고 권력자의 상징이었다. 해방 후에는 미 군정 사령관 하지가 살았고, 정부 수립 후에는 이승만이 ‘경무대’라는 이름을 붙여 살았다. ‘청와대’라는 이름은 4·19혁명 이후 집권한 윤보선 대통령 때부터 사용됐다. 청와대에서 최고 권력을 행사한 사람들의 말로는 하나같이 좋지 않았다. 그게 두려웠던 것일까? 

그러나 준비 없이 엄청난 예산을 써대며 무리하게 용산으로 집무실을 옮길 때부터 대통령의 국정운영 스타일은 불을 보듯 뻔하게 예견됐다. 용산은 임진왜란 때 명나라 군대와 왜군의 격전지 중 하나였고, 대한제국 말기에도 청나라와 일본이 세력다툼을 벌이던 곳이었다. 그 후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의 군사기지로, 해방 후에는 미군의 군사기지로 사용됐던 곳이다. 소통과는 거리가 먼 곳이다.

그런 용산에서 윤석열 정부는 단 1년만으로 어떤 기대도 부질없음을 여지없이 보여줬다. 이 정부의 1년을 한마디로 말하면 ‘외유내강(外柔內剛)’이다. 밖으로는 미국과 일본에 한없이 부드러우면서 안으로는 자기편이 아니면 철저하게 강압적인 모습을 보였다. 《시사저널》은 5월 12일 기사를 통해 윤석열 정부가 1년 동안 미국 무기만 약 18조 원어치를 구매했다고 보도했다.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구매한 2조5천억 원보다 7배 이상 많은 것이라고 한다. 놀라 까무러칠 지경이다.

“용 못된 이무기”라는 속담이 있다. 심술이 가득하고 인정이 없어 다른 사람에게 손해만 입히는 사람을 말한다. 용산의 권력자는 용이 되고 싶었던 건지 모르겠지만, 1년 동안 지켜본 국민은 용은커녕 이무기도 못 된다고 보는 것 같다. ‘용용 죽겠지’라는 조롱이 절로 나온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지난 10일 취임 1주년을 맞아 여당 지도부와 오찬을 함께하면서 “강 위에 배를 타고 가는데 배 속도가 너무 느리면 물에 떠있는 건지 가는 건지 모른다”라면서 속도를 주문했다고 한다. 속도가 문제가 아니다. 민심이라는 파도가 배를 부숴버릴 태세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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