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法’이라는 한자를 보면 ‘물 수水’와 ‘갈 거去’로 이루어져 있다. ‘상선약수上善若水’,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것이 최고라는 것인데, 실은 법이라는 게 이것과는 아주 거리가 멀다.

‘법사회학의 아버지’라는 19세기 독일의 루돌프 폰 예링은 법이 “개인의 이익과 사회의 이익을 조정하고 갈등의 소지를 최소화함으로써 두 가지를 다 보호해야 한다”라고 했지만, “강제를 수반하지 않는 법은 타지 않는 불이나 비치지 않는 등불과 같이 그 자체가 모순”이라고 말해 법의 강제성을 강조했다.

동양에서 법을 말한다면 상앙商鞅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진나라 효공에게 부국강병책으로 법가를 역설했다. 그는 백성의 일거수일투족을 법으로 규제하는 한편, 백성에게 법에 대한 신뢰를 보여주기 위해 도성의 남문에 장대를 세운 다음 북문으로 장대를 옮기기만 하면 많은 황금을 주겠다는 이벤트까지 기획했다. 백성들이 미심쩍어하며 나서지 않자 더 많은 황금을 약속했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어떤 사람이 장대를 북문으로 옮기자 상앙은 약속한 황금을 안겨 법의 지엄함을 보여주었다.

법은 엄격해야 하고 공정해야 했기에 태자가 법을 어겨도 용서가 없었다. 그 덕에 진나라는 안정되고 거리에서 절도범이 사라졌다. 전투가 벌어지면 모두 용감하게 싸워 부국강병이 현실이 됐다. 그러나 그의 법은 너무 가혹했다. 단 한마디의 불평불만이나 유언비어도 용납하지 않아 법에 대한 피로감과 원망이 늘어갔다. 그를 신임한 효공이 죽고 태자가 그 뒤를 잇자 그의 권력은 풍전등화처럼 위태로워졌다. 그의 말로는 비참했다. 그가 체포돼 거열형을 당하자 세상 사람들은 ‘자기가 만든 법에 자기가 죽은 자’라며 그를 조롱했다. 그의 부국강병책으로 진나라는 중국 최초의 통일국가가 됐지만, 존속기간은 단 15년에 그쳤다.

법은 이처럼 양날의 칼이다. 법은 사회적 합의가 중요하다.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 이해 당사자들에게만 맡기면 사회적 합의는 불가능하다. 예링의 말대로 개인과 사회의 이익을 모두 고려할 수 없을 때는 사회의 이익을 우선하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조자룡 헌 칼 쓰듯’ 한다는 비판의 소리가 높다. 간호법은 의사와 간호사의 밥그릇이 아니라 환자의 이익을 먼저 고려해야 했다. 그게 사회적 이익의 관점이다. 국회의 입법권도, 대통령의 거부권도 헌법에서 정한 법이다. 헌법으로 정한 이 두 개의 법적 권한이 충돌할 때는 또 무엇으로 판단할 것인가?

상앙이 실각하기 전 조량이란 사람이 “상군의 위태로움이 아침이슬과도 같은데, 오히려 수명을 더하려고 하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고 충고했다. 그의 충고를 가벼이 여긴 상앙은 결국 사지가 찢기는 거열형車裂刑을 면치 못했다. 우리 사회의 위태로움이 참으로 아침이슬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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