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예진국적: 필리핀앙헬레스 대학교 컴퓨터공학 (졸업)강원이주여성상담소필리핀 상담사
최예진
국적: 필리핀
앙헬레스 대학교 컴퓨터공학 (졸업)
강원이주여성상담소필리핀 상담사

경계지대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경계선 없이 살아야 하고 교차로가 되어야 한다. (Anzaldúa, 1999, 217, 《경계지대에서 산다는 것의 의미》 중)

나는 온종일 필리핀 사람이기도 하고 한국 사람이기도 하다. 지원을 요청하는 수많은 외국인들의 전화를 받으며, 한국기관에서 그들을 연계하기도 하고 직접 도움을 주기도 한다. 

춘천에 정착한 지 7년, 나의 시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생각할 때가 있다. 필리핀 앙헬레스시에서 태어나, 앙헬레스 대학을 졸업했다. 대학에 다니던 중 한국에서 유학 온 남편을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남편이 내게 청혼할 때까지 대한민국 그것도 춘천이라는 도시에 대해 아무 지식이 없었다. 더구나 내가 이주민이라는 경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춘천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에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는 상상하지 못했다. 

내가 태어난 모국은 경제적으로 어려워도 흥겨움을 즐기고 타인들과 잘 어울렸다. 특히 남편과 아내의 원 가족은 모두 동등한 위치로, 결혼한 여성도 친정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친정 가족을 보살폈다. 

얼마 전 지원한 이주여성 사례는 더욱더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위치가 어떤 것인지 잘 알려준다. 여성은 남편과의 의사소통, 특히 생활비를 신용카드로 지급하고 문자로 수신되는 지출내용에 일일이 간섭하는 시부모님의 통제는 견디기 어려웠다. 이혼을 결정한 후 시부모는 결혼 비용으로 지불한 돈을 다 갚기 전에는 이혼은 꿈도 꾸지 말라며 협박했다. 한국사회에서 이주여성이 이주민과 선주민이라는 차별적 위계 속에 놓이게 되며 받게 되는 억압과 차별, 모순은 언제나 상상 그 이상이다. 

나 또한 한국으로 이주하여 새로운 사회에 적응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드러나거나 드러나지 않은 차별이 존재했을 것이다. 

글로리아 안잘두아는 교차성 이론에서 ‘경계란 단절된 인위적인 선을 일컫지만, 경계지대란 이러한 인위적 경계에 의해 창출된 불편한 감정들이 합쳐져서 만들어낸 모호하고 확정되지 않은 장소, 머물러 있지 않고 항상 변환 중인 곳, 그래서 ‘정상’의 범주에서 벗어난 모호한 존재들이 거주하는 곳’이라고 정의했다. 

이제 안잘두아가 말한 경계의 존재들, 그 모호한 삶을 직시하면서 춘천 중앙로67번길 54번지, 강원이주여성상담소에서 움트는 희망을 말하고 싶다. 나는 그 안전한 경계지대 안에서 매일 필리핀 사람이기도 하고 한국 사람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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