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레마을 ‘책과 인쇄박물관’

 

김유정문학촌이 있는 실레마을에는 ‘책과 인쇄박물관’이 있다. 문학촌을 지나 금병산 등산로로 접어드는 초입에 자리한 박물관은 1천30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세계에서 가장 앞섰던 우리의 책과 인쇄문화의 중요성을 알리는 문화공간이다.

“우리가 보는 책 한 권 한 권은 모두 영혼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을 쓴 사람의 영혼과 그것을 만든 인쇄공의 영혼과 그것을 읽고 꿈꿔 왔던 사람들의 영혼이.”

박물관을 설립한 전용태 관장의 말이다. 가난으로 책이 귀했던 시절, 책을 실컷 읽는 게 소원이었던 아이는 자라면서 취미로 책을 모았다. 그는 은퇴한 뒤 원래는 조그만 북카페를 하려고 고민했다. 그러다 인쇄환경의 변화로 낡은 인쇄기와 납 활자가 고철로 버려지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에 오래된 활판인쇄기를 사들이고 그동안 모아 두었던 책으로 박물관을 세웠다.

책장에 꽂힌 책 모양을 본떠 지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커다란 활판인쇄기가 진열된 1층 전시관에는 활자들이 수백 개의 낡은 상자에 가득 담긴 채 벽을 따라 꽂혀 있었다. 고서 전시관인 2층에는 《훈민정음》·《동의보감》·《춘향전》 등 조선시대 책들이 소개되어 있고, 근·현대문학관인 3층에는 《진달래꽃》과 《님의 침묵》 등 근대의 진기한 초간본들과 다양한 신문·잡지가 전시되어 있었다. 

전은실 실장이 요즘 인기가 많다는 방으로 안내했다. 고서 전시관 옆에 자리 잡은 기록공간에서 전등이 있는 책상에 앉아 ‘나에게 주는 책의 의미’를 적어봤다. 꾹꾹 눌러 쓰는 손글씨의 감촉, 부드러운 종이의 느낌, 사각대는 연필 소리가 오랜만에 정겹다. 책을 사는 기준을 묻는 커다란 판에는 ‘제목’과 ‘작가’에 스티커가 가장 많이 붙어 있다. 나는 ‘누군가의 추천’란에 하얀 스티커를 붙였다. ‘책 애정도 지수’에 대한 질문을 따라가니 책 처방이 나오기도 한다. 책을 읽는 다양한 방법 중에서 중요한 부분을 베껴가며 읽는다는 ‘초서(抄書)’가 눈에 띈다. 요즘 추세에 맞게 변화하려는 운영자의 노력을 엿볼 수 있었다. 오래 기억하고 싶은 글을 적어 직접 활자를 고르고 잉크를 발라 인쇄하는 ‘나만의 엽서 만들기’ 체험도 흥미로웠다.

박물관에서는 활판인쇄기로 책을 만드는 주조 장인을 수소문해 꼬박 2년에 걸쳐 김유정의 소설 <봄·봄>·<동백꽃>·<산골나그네>와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그리고 김소월의 <진달래>·<못 잊어> 등의 시집을 출판하기도 했다. 활자가 지나간 흔적을 따라 눈으로 한 번, 그리고 손으로 한 번 더 읽는 즐거움을 선사하는 책들이다.

1년에 2만여 명에 달했던 방문객은 코로나 이후 절반으로 줄었다. 경영이 어려워 활판인쇄로 책을 출판하는 일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박물관을 나서며 책의 미래를 그려본다. PDF 파일이나 e-북 등의 영향으로 종이책이 사라질 것이라고 했지만, 여전히 살아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책과 인쇄박물관

춘천시 신동면 풍류1길 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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