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동차를 제일 먼저 탄 사람, 자전거를 제일 먼저 탄 사람

자동차 등록 대수 2천550만 대(2022년 12월 기준)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자동차는 생활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는 누가 처음으로 자동차를 타고 다녔을까?

근대 조선에서 의암 손병희 선생은 남이 하지 못하는 일도 쉽게 먼저 실천하였다. 개인적인 생활에서도 남보다 먼저 새롭게 생활한 것은 여기에서 다시 말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다 알고 있다. 선생이 일본에 있을 때(1903년)도 누구보다도 제일 먼저 자동차를 사서 타고 다녔다. 그때는 조선에서도 자동차 이야기를 들은 사람이 별로 없었을 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자동차 그림자조차도 잘 보지 못할 때였다. 

도쿄에서 모 박람회가 열렸는데 미국의 어떤 회사에서 자동차 두 대를 출품하였다. 한 대는 궁내 성에서 샀고, 한 대는 손병희 선생이 사서 도쿄 시가지를 타고 다녔다. 그때는 일본에서도 자동차는 지금의 비행기 이상으로 처음 보는 것인 까닭에, 선생께서 자동차를 타고 어디를 가면 일반 시민들과 길거리에서 노는 아이들이 개미 떼처럼 모여들어 구경을 하며 ‘지나가라 지나가라 한국 양반 지나가라’ 하고 떠들었다고 한다.

요즈음 건강 관리와 취미 생활로 무공해 이동 수단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고 있는, 예전에는 안경차니 쌍륜차니 하는 별명까지 얻었던 자전거는 누가 들여와서 탔는지 궁금하다.

(전략) 가마를 타거나 그렇지 않으면 조랑말이나 방울 단 당나귀를 타고 다니던 몇십 년 전에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면 그야말로 무슨 귀신의 조화를 부리는 사람으로 알기 쉬울 것이다. 그런데 지금(1928년)으로부터 32년 전에 서재필 박사는 남보다 먼저 자전거를 타고 다니었다. 박사는 갑신년(1884년) 김옥균 정변 때 멀리 미국으로 망명하여 미국에 귀화하여 살았다. 그 후 13년(1896년) 만에 정부의 부름을 받고 귀국하였는데, 이때 미국에서 타고 다녔던 자전거를 가지고 와서 타고 다니었다. 그때 윤치호씨는 박사에게 자전거 타는 법을 배워 가지고, 미국에 주문을 하여서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이 그때만 하여도 아직까지 일반 사람들의 지식이 어두운 까닭에 그들이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것을 보고 퍽 신기하게 생각하여 별별 말들이 많았었다. 박사는 미국에 가서 미국인에게 축지법을 배워 하루에도 몇백 리 몇천 리를 마음대로 다닌다느니, 윤치호는 대대로 집안에 내려오는 보약이 있어 보약을 먹고 남대문을 마음대로 훌훌 뛰어넘어 다닌다느니 하였다. 또 자전거를 안경차니 쌍륜차니 하는 별명까지 지었었다. 

그리하여 독립협회 시대에도 여러 사람들이 서재필이나 윤치호를 조화꾼이라고 하여 보부상패들도 함부로 덤벼들지 못하였다. 또 한참 싸움을 벌일 때 서씨나 윤씨가 구경꾼들이 둘러싼 곳으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면서 종을 한 번 울리면 여러 사람들이 무슨 대포나 터지는 듯이 겁을 내고 도망을 쳤다. (후략)

※ 이 글은 1928년 12월 발행한 《별건곤》 통권 16·17합호 ‘각계 각면 제일 먼저 한 사람’의 글 중에서 발췌한 것이다. ‘차상찬 읽기 시민모임’에서 현대어로 윤문한 것이다. 다음 호에 <각계 각면 제일 먼저 한 사람> 두 번째 이야기가 이어진다.

※ 이 글은 1928년 12월 발행한 《별건곤》 통권 16·17합호 ‘각계 각면 제일 먼저 한 사람’의 글 중에서 발췌한 것이다. ‘차상찬 읽기 시민모임’에서 현대어로 윤문한 것이다. 다음 호에 <각계 각면 제일 먼저 한 사람> 두 번째 이야기가 이어진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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