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삼경 소설가

최삼경 소설가
최삼경 소설가
최북 일대기를 다룬 최삼경 소설가의 첫 장편소설 '붓, 한자루의 생'
최북 일대기를 다룬 최삼경 소설가의 첫 장편소설 '붓, 한자루의 생'

 

49편의 소설 속에 담긴 강원도 풍경을 따라가는 강원도 여행기 《헤이~ 강원도》와 지역 화가와 조각가 등 예술가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에세이로 풀어냈던 《그림에 붙잡힌 사람들 1·2》의 최삼경 작가가 첫 장편 소설 《붓, 한 자루의 생》을 펴냈다.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천재 화가 최북(崔北·1712~1786)의 일대기를 통해 작가는 화려했던 시대의 그늘을 응시하며 아웃사이더의 운명을 타고난 예술가를 위로한다. 최 작가를 만나 단순한 괴짜 화가가 아닌 인간 최북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들었다.

지난해 7월 강원도 대변인실 근무를 그만두고 약 10개월이 지났다. 어떻게 지냈나?

20년 가까이 짊어졌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니 참 홀가분하더라. 한동안 등산과 여행을 다니며 많이 비우고 놀았다. 마음은 편한데 이제 슬슬 주머니 사정을 염려해야 할 때가 돼서 조금씩 불편해지고 있다. 하하. 

첫 소설 《붓, 한 자루의 생》에서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조선 시대 화가 최북을 탐구했다.

우연히 최북을 알게 됐고 호기심이 생겨 그를 다룬 소설을 찾아 읽었다. 그를 알면 알수록 좀 더 입체적으로 세상에 알리고 위로해주고 싶어졌다. 그는 사대부 출신이 아닌 중인 신분으로서 우리나라 최초의 직업 화가였다. 필법이 대담하고 거침없었으며 당시 대표적인 문화인이었던 강세황·심사정 등과 어울린 인물이다. 자신의 이름인 북(北)자를 반으로 쪼개서 자를 칠칠(七七)로 지었으며, 붓 하나로 먹고산다고 하여 호를 호생관(毫生館)이라고 지었다.

성질이 괴팍하여 기행이 많았고 여행을 즐겼으며 두주불사였다. 하지만 단순한 괴짜가 아니라 시·서·화를 두루 겸비한 소위 엘리트였다. 그런 그가 죽기보다 더한 고통이 따랐을 자기 눈을 찔러 스스로 눈을 멀게 한 밑바탕에는 현재의 우리가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신분제 등 시대에 대한 분노와 울분이 있었을 거다. 그 점을 그려내고 싶었다. 

인물 탐구를 통해 문화의 중흥기로 알려진 영·정조 시대가 한편으로는 조선의 비극이 싹튼 시기였음을 드러낸 점도 흥미롭다.

최북이 살던 영·정조 시대가 문화와 경제의 르네상스이고 태평성대라고 알려졌지만 속은 다르다. 영조 시대 때 힘을 얻기 시작한 노론 세력,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가 세워졌을 때 ‘조선이 명나라’라는 시대착오적인 고집으로 성리학을 완고하게 밀고 나간 그들은 쇄국정책을 펼치고 결국에는 친일파 등으로 이어오며 우리 근현대사까지 잠식해 온 세력이다. 

또 전쟁은 없었던 시기지만 기근과 전염병 등으로 임진왜란 못지않게 많은 백성이 죽었는데 과연 좋기만 했던 시대였겠느냐 따지고 싶었다. 그런 과정에서 당연히 그런 시대적 분위기가 한 예술가한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초점을 맞췄다. 그런데 잘 그려냈는지는 모르겠다. 하하.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인 만큼 어려운 작업이었겠다.

평전을 쓰기엔 자료가 너무 없었다. 부재한 자료를 상상력으로 채워야 해서 소설로 쓸 수밖에 없었다. 삶의 중요한 부분은 사실에 근거를 뒀지만, 부인과 기생 월향 등의 이야기는 허구다. 

에세이 《그림에 붙잡힌 사람들》에서도 예술가의 삶과 진솔한 이야기를 전했다. 

예술가는 아웃사이더의 운명을 타고났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예술가는 시대가 제대로 된 길을 가고 있는지 점검해주는 사람들이다. 자유롭게 상상하고 풍자하다 보면 시대와 불화할 수밖에 없다. 진짜 예술가라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 최북이나 《그림에 붙잡힌 사람들》에서 만난 지역 작가들은 시대와 정도만 다르지 크게 다르지 않다. 화마(畵魔)에 포박된 그들이 달리 선택할 길 없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붓을 놓지 않고 버틸 수 있는 건 어쩔 수 없는 화업(畵業) 때문이다. 그들의 삶을 보면서 ‘내가 너무 좀 쉽게 사는구나’ 이런 반성도 했다. 그런 생각이 《붓, 한 자루의 생》을 쓰는데도 동력이 됐다.

이 시대에 ‘최북’이 있다고 보나?

글쎄요. 옳고 그름을 떠나서 최북처럼 들이받는 예술가와 지식인은 없는 것 같다.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그의 동료들 외에는 별로 움직임이 없다. 국민은 열심히 일하는데 더 가난해진다. 이유가 분명히 있는데 다들 외면하고 있다. 최북이 살던 시대와 다르지 않다. 양반들의 문화에 복속하는 체제를 확장하려고 했지 민중들의 자유로운 창의성과 예술성에는 관심이 없다. 혁신이 나올 수 없는 구조가 고착됐다. 

이 땅에서 문화적 황금기는 언제였다고 보나?

질문이 어렵다. 그나마 혼란스러웠던 해방공간이 아닐까? 문화를 어떤 이념, 사상까지 확장해서 본다면 해방부터 한국전쟁 발발 전까지의 시기가 황금기는 아닐지 몰라도 가장 활력 넘치는 시기였던 것 같다. 공고한 체제가 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새로운 것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서로 충돌하고 영향을 주고받은 역동적인 시절이다. 

책과 관련 없는 질문이다. 춘천이 자칭 문화도시라 하는데 작가로서 어떻게 평가하는가?

문화도시다운 큰 설계가 없다. 고층아파트가 한 도시의 랜드마크로 손꼽히는 행태를 어떻게 문화도시라 부를 수 있나? 중구난방으로 개발이 되면서 과연 춘천다움이 무언지 춘천다운 춘천의 문화가 뭔지 점점 찾기 어렵게 됐다. 문화향유를 늘리는 것은 좋지만 마치 학예회 같은 작은 이벤트가 난무하면 큰 나무가 자라기 힘든 것 아닌가. 대표 콘텐츠 몇 개를 집중적으로 키우거나 지역의 촉망받는 젊은 작가를 장기적으로 제대로 지원해서 그 결과를 보다 큰 시장에서 소개할 기회도 열어주는 등 좀 굵직한 문화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특히 주요 작가들이나 예술가들에 대한 예우와 조명이 없는 게 안타깝다. 가령 한국을 대표하는 소설가 중 한 분인 오정희 선생이나 전상국 선생, 황효창 화백 등에 대해서 과연 춘천시가 손흥민의 반이라도 신경 쓰고 있는지 묻고 싶다. 그분들이 웃어야 춘천의 문화가 살아난다. 

다음 작품은 구상하고 있나?

글쎄요. 아직은 구상단계이지만 진한 사랑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남녀의 사랑을 통해 한국 사회의 모순도 들여다보고 일과 가정, 성취의 의미를 묻는 작품을 구상 중인데 잘 될지 모르겠다. 일단 무엇이든지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버텨야 하는데 직장을 그만두니 훨씬 가벼워져서 걱정이다. 하하. 아무튼 이제 시작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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