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듬

유태안


곰 인형을 안고 잠이 들려는 아이 눈으로

고요함이란 리모컨 안에 건전지 두 알
서로에게 손을 대고 발을 대고 눈빛을 대고
불러오고 싶은 것 다 불러오는

그래서 아무도 보지 않아도 선인장 화분은
부지런히 하얀 나팔 불 준비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내 발걸음엔 리듬이 일었지

시는 불편하다. 시라는 문학의 장르 형편이라는 것이 그럴 수밖에 없다. 읽다 보면 무엇을 말하려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한데 모르겠다. 모든 시에는 그 시의 발화점이 있다. 그런 순간의 직관이 시의 제목과 연계돼 있을 가능성은 매우 크다.

시인이 서 있는 시간은 퇴근 무렵이었을 것이다. 화분에서 하얗게 핀 선인장 꽃을 발견했을 테고, 꽃 모양에서 나팔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 꽃을 하염없이 들여다보다 자신의 퇴근 중인 상황을 자신에게 일깨우고 있었을 것이다. 거기서 어떤 행진곡풍 리듬의 나팔 곡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등 떠밀리는 일상의 진행 방향에 반기를 들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불온함이 보인다. 우리는 우리 생이 아직 어리던 때의 가없는 순진무구함으로 우리 생을 되돌릴 수 있을까? 고요를 요구하는 집에는 전지전능의 건전지 두 알이 산다. 두 알의 건전지가 온몸으로 전력을 다해 순한 길을 놓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힘에 부치는 일들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이렇게 고요한 가시로 바뀐 선인장의 날 선 이파리들 앞에서 시인은 선험적으로 일상의 모반을 꿈꾸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세상을 움직이게 하는 질서는 리듬이다. 리듬은 보이지 않는 이타의 세계를 잇는 연결 끈인 파동이다. 침묵의 소리지만 서로를 움직이게 하는 상호 연관성을 가지며 주변을 따라 확장을 거듭함으로 증폭한다. 그것은 순정 무구한 아이의 눈으로만 볼 수 있는 세계에 속한다. 그런 새로운 세계의 발견과 소통은 집으로 가는 기쁨을 알려주고 거기서 다른 리듬으로 확장한다.

당신이 다르게 읽었다면 그것도 옳다.

유기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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